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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8-10-20 12:56     조회 : 4972     트랙백 주소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는 서기 1517년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난 때부터,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이 끝날 때까지의 400년 간을 말한다. 이 시대의 성격에 관한 대강은 동시성(同時性)으로 본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와의 대조에서 이미 논술되었으나, 여기에서 좀더 상세한 것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런데 복귀섭리(復歸攝理)로 보아 이 기간은 종교개혁기,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 정치와 경제 및 사상의 성숙기 등 3기간으로 구분된다.


제1절 종교개혁기 (1517∼1648)


서기 1517년 독일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때부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 ·구종파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의 130년 기간을 종교개혁기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기간의 성격은 중세봉건사회(中世封建社會)의 소산인 문예부흥(文藝復興)과 종교개혁으로써 형성된다. 하나님이 중세사회를 통하여 이루려 하셨던 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었을 때, 이것을 새로운 섭리역사의 방향으로 전환시켜서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나아가는 중추적인 사명을 한 것이 바로 문예부흥(Renaissance)과 종교개혁이었다. 따라서 이에 관한 것을 알지 못하고는 이 시대에 대한 성격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중세 봉건사회의 소산이라면, 이 사회가 중세 인간들의 본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어서 그것들을 해산하게 하였는가?


중세는 봉건제도와 로만 가톨릭의 세속적(世俗的)인 타락으로부터 오는 사회환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이 억압되어 그 자유로운 발전을 기할 수 없게 된 때였다. 원래 신앙은 각자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 직접적으로 맺어지는 종적인 관계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과 승려들의 간섭과,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그 규범은, 당시 인간들의 신앙생활의 자유를 구속하였고, 그 엄격한 봉건계급제도(封建階級制度)는 인간의 자주적인 신앙활동을 속박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승려의 승관매매와 인민에 대한 착취로써 그들의 생활은 한층 더 사치와 향락으로 흘렀었다. 따라서 교황권(敎皇權)은 일반사회의 권력기관과 다름없이 비신앙적인 입장에 서게 되어, 그들은 국민의 신앙생활을 지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중세 봉건시대(中世封建時代)의 사회환경은 인간이 그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경 가운데 구속되어 있었던 중세인(中世人)들은, 본성적으로 그 환경을 타파하고 창조본성을 복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본성은 뚜렷이 내외 양면의 성향을 가지고 나타났던 것이니, 그의 창조원리적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에 대한 형상적인 실체대상(實體對象)이므로,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을 닮았다. 그리고 그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의 수수작용(授受作用)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창조된 인간의 본성도 내외 양면의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러한 인간에 대한 복귀섭리(復歸攝理)를 하심에 있어서도, 인간 본성의 양면의 추구에 대응하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래 인간의 외적인 육신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으로 내적인 영인체를 창조하셨기 때문에(창 2 : 7), 재창조(再創造)를 위한 복귀섭리도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복귀해 들어가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미 후편 제1장에서 논한 바와 같이, 타락인간은 외적인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한 터전 위에 서야 내적인 '실체헌제(實體獻祭)'를 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성공함으로써만 보다 내적인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지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타락인간을 복귀하심에 있어서도, 구약 전 시대(舊約前時代)에는 헌제에 의하여 '종들의 종'의 입장(창 9 : 25)을,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율법(律法)으로써 종의 입장(레 25 : 55)을, 그리고 신약시대(新約時代)에는 믿음으로써 양자(養子)의 입장(롬 8 : 23)을, 성약시대(成約時代)에는 심정(心情)으로써 참자녀의 입장을 복귀하는 순서로 해 나오시는 것이다(후편 제2장 제3절 Ⅲ 2)


또 과학에 의하여 먼저 외적인 사회환경을 복귀해 가면서, 종교를 세워서 내적인 인간의 심령(心靈)을 복귀하는 섭리를 해 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천사와 인간이 창조된 순서를 보더라도 외적인 천사장이 먼저였고 내적인 인간이 나중이었다. 따라서 천사와 타락인간을 복귀함에 있어서도, 먼저 외적인 천사세계를 세우시어 역사(役事)케 하심으로써, 인간의 육신을 중심한 외적인 실체세계(實體世界)를 복귀하신 다음, 이어서 영인체를 중심한 내적인 무형세계(無形世界)를 복귀하시는 순서로 섭리해 나오시는 것이다.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내적인 사명을 다해야 했던 교황들의 윤락(淪落)으로 말미암아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고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려는 중세 인간들은, 그 본성의 내외 양면의 추구에 의하여, 중세적 지도정신을 가인 아벨 두 형의 사상에 대한 복고운동(復古運動)으로 분립하였던 것이니, 먼저는 가인형인 헬라사상 복고운동이요, 다음은 아벨형인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이었다. 그리하여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은 인본주의(人本主義)의 발현인 문예부흥(文藝復興)을 일으켰고,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은 신본주의(神本主義)의 부활을 위한 종교개혁(宗敎改革)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면 먼저 헬라사상과 히브리사상의 흐름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교류되어 이 시대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기원전(紀元前) 2천년대에 에게해의 크레타도(島)을 중심하고 미노아문명권이 형성되었었다. 이 문명은 희랍(希臘)로 흘러 기원전 11세기에 이르러, 인본주의의 헬라사상(Hellenism)을 지도정신으로 하는 가인형의 헬라문명권을 형성하였고, 한편 이와 거의 동시대(同時代)에 서아시아에서는 신본주의의 히브리사상(Hebraism)을 지도정신으로 하는 아벨형의 히브리문명권을 형성하였으니, 이때가 바로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였었다.


당시의 이스라엘 왕들이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인민들과 함께 성전(聖殿)을 받듦으로써 이루어지는 '실체기대(實體基臺)'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메시아를 맞았더라면, 그때에 히브리문명권은 헬라문명권을 흡수하여 하나의 세계적인 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 못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바빌론으로 포로(捕虜)되어 갔다가 귀환한 후, 기원전 333년 희랍(希臘)에 속방(屬邦)된 때로부터, 기원전 63년 헬라문명권내에 있었던 로마에 속방되어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기간은, 히브리사상이 헬라사상에 지배를 당하는 입장에 처하였던 시대이다.


전장(前章)에서 이미 논술한 바 있거니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신봉(信奉)하여 그를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라면, 당시의 로마제국은 예수님을 중심한 메시아왕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때에 히브리사상은 헬라사상을 흡수하여 하나의 세계적인 히브리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써 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히브리사상은 그대로 헬라사상의 지배하에 머물러 있게 되었었다.


서기 313년에 이르러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基督敎)를 공인한 후부터는, 점차 히브리사상이 헬라사상을 극복하기 시작하여, 서기 700년대에 이르러서는 , 희랍정교문명권(希臘政敎文明圈)과 서구문명권(西歐文明圈)을 형성하게 되었었다.


중세사회(中世社會)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이었던 교황과 국왕들이 타락되지 않았더라면, 그 때에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히브리사상은 헬라사상을 완전히 흡수 융합하여 세계는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윤락(淪落)으로 인하여 히브리사상을 중심한 중세적 지도정신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이에서 하나님은 사탄 분립의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치 아담에게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시기 위하여, 그를 가인과 아벨로 분립하셨던 것과 같이, 이때에도 그 지도정신을 두 사상으로 재분립(再分立)하는 섭리를 하셨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가인형의 헬라사상 복고운동(復古運動)과 아벨형의 히브리사상 복고운동이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마침내 각각 문예부흥(文藝復興)과 종교개혁(宗敎改革)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주도이념으로 하여 문예부흥이 일어남에 따라서, 헬라사상이 히브리사상을 지배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는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에 있어서, 유대만족이 희랍(希臘)에 속방됨으로써, 헬라사상이 히브리사상을 지배하던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湯減復歸)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마치 가인이 아벨에게 굴복함으로써만, 아담에게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하여, 메시아를 맞기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가인형인 헬라사상이 아벨형인 히브리사상에 완전히 굴복함으로써, 비로소 중세적 지도정신에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하여, 재림주(再臨主)님을 맞기 위한 '실체기대'가 세계적으로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I. 문예부흥(Renaissance)


중세 사회인들의 본성(本性)의 외적인 추구에 의하여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이 제기되었고,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문예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이다. 그러면 그 본성의 외적인 추구는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되어 인간이 그것을 추구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그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하여 완수함으로써만 완성되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 된다. 또 인간은 자유의지로써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개성을 완성함으로써 인격의 절대적인 자주성(自主性)을 갖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 인격의 자주성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계시(啓示)를 받지 않아도, 그의 이지(理智)와 이성(理性)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고 생활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또한 본성적으로 이지와 이성을 추구하게 된다. 인간은 또 자연계(自然界)를 주관하도록 창조되었으므로, 과학으로써 그 속에 숨겨진 원리를 찾아 현실생활의 환경을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연과 현실과 과학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 사회인들은 그 봉건제도(封建制度)에 의한 사회환경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본성이 억압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본성의 외적인 욕망에 의하여 위와 같은 것들을 더욱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중세인(中世人)들은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 이래 동방(東方)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헬라사상의 고전(古典)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헬라의 고대정신이 바로 인간의 자유와, 인격의 자주성과, 이지와 이성의 존엄성과, 자연을 숭상하고 현실에 치중하며 과학을 세우는 것 등 인간 본성의 외적인 추구에 의한 것이어서, 이것들이 그대로 중세인의 본성적인 욕망에 부합되었으므로, 헬라사상의 복고운동(復古運動)은 불길 같이 일어나 드디어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대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르네상스는 불란서어(佛蘭西語)로서, '재생(再生)' 또는 '부흥(復興)'이라는 뜻이다. 이 르네상스는 14세기 경부터 헬라사상에 관한 고전 연구의 본산인 이태리(伊太利)에서 태동되었었다. 이 인본주의(人本主義)운동은 처음에는 중세인으로 하여금 그리이스의 고대로 돌아가 그 정신을 모방케 하려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었으나, 더 나아가 이 운동은 그 고전문화(古典文化)를 재생하여 중세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개혁운동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또 이것은 비단 문화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등 사회 전반에 걸친 혁신운동으로 확대되어, 사실상 근대사회를 형성하는 외적인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 본성의 외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시대적인 사조(思潮)였던 인본주의(혹은 인문주의)로 말미암아, 봉건사회(封建社會) 전반에 대한 외적인 혁신운동으로 전개된 현상을 르네상스(문예부흥)라고 부른다.


II. 종교개혁


중세사회(中世社會)에 있어서의 교황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는 교황과 승려의 세속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룰 수 없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중세인들이 인본주의를 부르짖게 됨에 따라,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규범에 반항하게 되었고, 인간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봉건계급제도(封建階級制度)와 교황권(敎皇權)에 대항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또 인간의 이성(理性)과 이지(理智)를 무시하고, 무엇이든지 교황에 예속시키는 데서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고루한 신앙생활에 반발하게 되었으며, 자연과 현실과 과학을 무시하는 둔세적(遁世的), 타계적(他界的), 금욕적(禁慾的)인 신앙태도를 배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마침내 중세 기독교인들은 교황정치(敎皇政治)에 반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중세 사회인들이 그 본성(本性)의 외적인 욕망을 추구함에 따라서, 억압되었던 그 본성의 내적인 욕망도 추구하게 되어, 드디어 사도(使徒)들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기에 열렬했던 초대 기독정신(基督精神)에로의 복고(復古)를 부르짖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중세에 있어서의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이다.


그리하여 14세기에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신학교수 위클리프(Wycliffe, 1324∼1384)는 성서를 영역(英譯)하여, 신앙의 기준을 교황이나 승려에게 둘 것이 아니고 성서 자체에다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교회의 제도나 의식이나 규범은 성경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증언하면서, 승려의 윤락(淪落)과 그들의 민중에 대한 착취 및 권력 남용을 통박하였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운동(宗敎改革運動)은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에 의하여 교황의 위신이 떨어진 후, 14세기부터 이미 영국에서 태동되었고, 15세기 말엽에는 이태리(伊太利)에서도 이 운동이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하여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1517년 교황 레오 10세가 성베드로사원의 건축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사후(死後)에 구원(救援)을 받는 속죄(贖罪)의 표라고 선전하면서 면죄부(免罪符)를 팔게 되자, 이 폐해에 대한 반대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결국 독일에서 비텐베르크대학의 신학교수로 있던 마르틴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운동은 폭발되었다. 그리하여 이 혁명운동의 불길은 점차로 증대되어 불란서(佛蘭西)에서는 칼빈, 스위스에서는 쯔빙글리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전되어 갔고, 그것은 영국, 화란(和蘭) 등 제국(諸國)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되어 신교운동(新敎運動)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국제간의 싸움은 백여년 간이나 계속되어 오다가, 마침내 독일을 중심하고 일어났던 30년전쟁(三十年戰爭)이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인하여 끝나면서, 신·구 종파의 싸움은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그 결과 북구(北歐)는 게르만 민족을 중심한 신교(新敎)의 승리로 돌아갔고, 남구(南歐)는 라틴 민족을 중심한 구교(舊敎)의 판도로서 남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30년전쟁은 독일을 중심하고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교도 간에 일어났던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단순한 종교전쟁(宗敎戰爭)에 그치지 않고, 독일제국의 존폐(存廢)를 결(決)하는 정치적인 내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전쟁을 종식시킨 베스트팔렌강화회의(講和會議)는, 신·구 교파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는 종교회의(宗敎會議)인 동에, 독일, 불란서(佛蘭西), 서반아(西班牙), 스웨덴 등 제국간(諸國間)의 영토문제 해결하는 정치적인 국제회의(國際會議)이기도 하였다.


제2절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1648∼1789)


이 기간은 서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교운동이 성공한 이후, 1789년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이 일어날 때까지의 140년 기간을 말한다. 문예부흥(文藝復興)과 종교개혁(宗敎改革)에 의하여 인간 본성의 내외 양면의 욕망을 추구하는 길을 개척하게 된 근세인(近世人)들은, 신교(信敎)와 사상의 자유로부터 일어나는 신학 및 교리의 분열과 철학의 싸움을 면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후편에서 논해 온 바와 같이, 복귀섭리(復歸攝理)는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개인에서 세계에 이르기까지 가인 아벨 두 형의 분립역사(分立役事)에 의하여 이루어져 나오고 있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 있어서도 이 타락세계(墮落世界)는 가인형의 공산세계(共産世界)와 아벨형의 민주세계(民主世界)로 분립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만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이루어질 있었던 것과 같이, 이때에도 가인형의 세계가 아벨형의 세계에 굴복함으로써만 재림주님을 맞기 위한 세계적인 '실체기대'가 이루어져서, 하나의 세계를 복귀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세계가 이루어지려면, 그를 위한 두 형의 인생관(人生觀)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기실 이 두 형의 인생관은 이 기간에 확립되었던 것이다.


I. 가인형의 인생관


인간 본성의 외적인 추구는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을 일으키어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낳았고, 인본주의를 뒷받침으로 하여 일어난 반중세적(反中世的)인 문예부흥운동(文藝復興運動)은, 신에의 귀의와 종교적인 헌신을 가벼이 하고, 모든 것을 자연과 인간본위로 대치시켰다. 즉 신에 복종한 나머지, 자연이나 인간의 육신을 천시하여 죄악시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중세적인 인생관에서, 이성(理性)과 경험(經驗)에 의한 합리적인 비판과 실증적인 분석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을 인식함으로써, 그들의 가치를 높이는 인생관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인생관은 자연과학의 발달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인하여, 인생에 대한 인식(認識) 사유(思惟)의 방법론에 두 가지 형식을 밟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근세철학(近世哲學)의 2대 조류를 이루게 되었으니, 하나는 연역법(演繹法)에 의한 이성론(理性論)이요, 또 하나는 귀납법(歸納法)에 의한 경험론(經驗論)이다.


불란서(佛蘭西)의 데까르뜨(Descartes 1596-1650)를 비조(鼻祖)로 하는 이성론은, 모든 진리는 인간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이성에 의하여서만 탐구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역사성이나 전통을 타파하고 연역법을 근거로 하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는 명제를 세우고, 이로부터 연역함으로써 비로소 외계(外界)를 긍정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신(神)이나 세계나 자기까지도 부정하는 입장에 서려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영국의 베이컨(Bacon 1561∼1626)을 비조로 하는 경험론은, 모든 진리는 경험에 의하여서만 탐구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마치 백지와 같아서 새로운 진리를 체득하려면 모든 선입관을 버리고 실험과 관찰에 의하여 인식해야 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신을 떠나서 이성(理性)을 존중하는 합리주의사상(合理主義思想)과, 경험에 토대를 둔 인간 중심의 현실주의사상(現實主義思想)은 한가지로 신비와 공상을 배격하고, 인간생활을 합리화하며 현실화하여 자연과 일간을 신으로부터 분리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문예부흥(文藝復興)은 인문주의(人文主義)로부터 흘러온 두 사조(思潮)를 타고, 인간이 그의 내적인 성향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길을 막고, 외적인 성향만을 따라서 사탄편으로 돌아가 길을 열어 주는 인생관을 낳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가인형의 인생관이었다. 이 가인형의 인생관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역사와 전통을 타파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이성적 또는 현실적으로만 판단하며, 불합리한 것이나 비현실적인 것을 철저히 배격하여, 신을 부정하고 합리적인 현실에만 치중하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계몽사상(啓蒙思想)이었다. 이와 같이 경험론(經驗論)과 이성론(理性論)을 주류로 하여 피어 오른 계몽사상은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가인형의 인생관의 영향을 받아, 영국에서는 허버트(Herbert 1583∼1648)를 시조(始祖)로 하여 초월신교(Deism) 생겼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 천계(天啓)와 이성(理性)의 조화에 기초를 두고 발전한 신학에 대하여, 초월신교(超越神敎)는 단순히 이성을 기초로 한 신학을 세우려 한 것이었다. 그들의 신관(神觀)은 단순히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였다는 일의(一意)에만 국한시키려 하고, 인간에게 있어 신의 계시나 기적은 필요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세기 초엽 독일의 헤겔(Hegel 1770∼1831)은 18세기 이후에 일어난 관념론 철학을 대성하였다. 그러나 이 헤겔철학도, 계몽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불란서에서 일어난 무신론(無神論)과 유물론(唯物論)의 영향을 받아, 그를 반대하는 헤겔좌파(左派)의 파생을 가져 왔다. 그리하여 이들 헤겔좌파는 헤겔의 논리를 뒤집어서, 오늘의 공산세계(共産世界)를 이룩한 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 唯物論)이란 철학을 체계화하였다. 헤겔좌파인 슈트라우스(Strauss 1808∼1874) 는 '예수전'을 저술하여 성서에 나타난 기적은 후세의 날조라고 부정하였고, 포이에르바하(Feuerbach, 1804∼1872)는 그의 '기독교의 본질'에서, 사회적 또는 경제적 여건이 종교 발생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그들의 학설은 유물론의 뒷받침이 되었다.


마르크스(Marx 1818∼1883)와 엥겔스(Engels 1820∼1895) 는 슈트라우스나 포이에르바하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보다도 불란서의 사회주의사상(社會主義思想)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아,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창함으로써, 문예부흥(文藝復興) 이후에 싹트기 시작하여 계몽사조(啓蒙思潮)로 발전해 온 무신론과 유물론을 집대성하는데 이르렀다. 그 후에 가인형의 인생관은 더욱 성숙하여 오늘날의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를 이루게 된 것이다.


II. 아벨형의 인생관


우리는 중세사회(中世社會)로부터 근대사회(近代社會)에로의 역사의 흐름을, 신이나 종교로부터 인간을 분리 혹은 독립시키는 과정으로만 보기 쉽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중세 사회인의 본성의 외적인 추구에 의하여 일어났던 가인형의 인생관에 입각해서만 보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중세인들의 본성적인 추구는 이러한 외적인 것에만 멎어졌던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보다 더욱 내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본성의 내적인 추구가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復古運動)을 일으킴으로써 종교개혁운동(宗敎改革運動)이 일어났고,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철학과 종교는 창조본성(創造本性)을 지향하는 입체적인 인생관을 수립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우리는 아벨형의 인생관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인형의 인생관은 중세인을 신과 신앙으로부터 분리 혹은 독립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지만, 이 아벨형의 인생관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고차적으로 신을 지향하여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독일의 칸트(Kant 1724∼1804)는 서로 대립하여 나왔던 경험론(經驗論)과 이성론(理性論)을 흡수하여 새로이 비판철학(批判哲學)을 세움으로써, 내외 양면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本性)의 욕망을 철학적으로 분석하여, 철학적인 면에서 아벨형의 인생관을 개척하였다.


즉 우리의 다양한 감각은 대상(對象)의 촉발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인식(認識)의 내용만 주어질 뿐이고 인식 자체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 인식이 성립되기 위하여는 다양한 그 내용(이것은 후천적이며 경험적인 것이다)을 일정한 관계에 의하여 통일하는 형식이 없어서는 아니 된다. 그 형식은 바로 나의 주관(主觀)이다. 그러므로 사유(思惟)하는 능력 즉 나의 오성(悟性)의 자발적인 작용에 의하여, 나의 주관적인 형식 (이것은 선천적이며 초경험적이다)을 가지고 대상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감각을 통합하고 통일하는 데서 인식이 성립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칸트는 대상으로 인하여 주관을 형성한다는 종래의 모사설(模寫說)을 뒤집어, 주관이 대 상을 구성한다는 학설을 세우게 되었다.


칸트의 학설을 받아, 그의 제1 후계자인 피히테(Fichte 1762∼1814)를 비롯하여, 셸링(Schelling 1775∼1854) 헤겔(Hegel 1770∼1831)등이 배출되었던 것인데, 특히 헤겔은 그의 변증법(辨證法)으로 철학의 새로운 면을 개척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관념론(觀念論)은 철학적인 면에 있어서의 아벨형의 인생관을 형성하였다.


종교계에 있어서는, 당시의 사조(思潮)인 합리주의(合理主義)의 영향을 받고 있던 종교계의 경향을 반대하고, 종교적 정열과 내적 생명을 중요시하여, 교리와 형식보다도 신비적 체험에 치중하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보면 첫째, 경건주의(Pietism)로서, 이것은 독일의 스페너(Spener 1635-1705)를 중심하고 일어났던 것인데, 정통적 신앙을 따르려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고, 신비적인 체험에 치중하였던 것이다. 이 경건파(敬虔波)의 운동이 영국에 파급되어 영국민(英國民)의 생활 속에 스며있던 종교심(宗敎心)과 융화하여, 웨슬레(Wesley) 형제를 중심한 메소디스트(Methodist)파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교파는 침체상태에 빠져 있던 당시의 영국 교계에 크게 부흥의 기운을 일으켰었다.


또 영국에는 신비주의자 폭스(Fox 1624∼1691)를 비조로 한 퀘이커(Quaker)파가 일어 났다. 폭스는 그리스도는 신자의 영혼을 비치는 내적인 빛이라고 주장하면서, 성령(聖靈)을 받아서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하여 내적 광명을 체휼하지 않으면 성서의 진의(眞意)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교파는 미대륙(美大陸)에서도 많은 박해를 받으며 포교하였다.


다음으로 스웨덴보리(Swedenborg 1688∼1772)는 저명한 과학자이면서 영안(靈眼)이 열려서 천계(天界)의 많은 비밀을 발표하였다. 그의 발표는 오랫동안 신학계에서 무시를 당하여 왔으나, 최근에 이르러 영계(靈界)에 통하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점차 그 가치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아벨형의 인생관은 성숙하여 오늘의 민주주의세계(民主主義世界)를 이루어 놓게 된 것이다.


제3절 정치 경제 및 사상의 성숙기(1789-1918)


전 시기에 있어서 종교 및 사상의 투쟁은,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人生觀)을 수립하였고,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이 두 형의 인생관은 각자의 방향대로 성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성숙에 따라서 가인 아벨의 두 형의 세계가 형성되어 갔으며, 사회의 구조도 이 두 인생관에 입각한 사회 형태에로 정리되어 가면서, 정치와 경제와 사상도 이상사회(理想社會)에로 전환될 수 있는 전 단계에까지 진전하였다.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과 영국의 산업혁명(産業革命)이 있은 후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이 끝날 때까지가 바로 이러한 섭리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I. 민주주의


역사발전의 관점에서 본 민주주의(民主主義)에 관하여는 이미 전장(前章)에서 논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가 나오게 된 외적인 경위였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역사의 굽이침 속에서, 어떠한 사상의 흐름을 타고 오늘의 민주주의가 나오게 되었는가 하는 내적인 경위를 알아야 한다.


이미 후편 제4장 제7절 II 에서 논한 바와 같이,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에 있어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 왕국이 하나 되어 메시아 왕국을 위한 군주사회(君主社會)를 이루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했더라면, 그때에 봉건시대(封建時代)는 끝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대는 연장되어 정치사와 종교사와 경제사가 서로 분립된 노정을 따라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세 봉건시대에 있어 지방 제후(諸侯)에게 분산되어 있었던 정치권력은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 이후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문예부흥(文藝復興)과 종교개혁(宗敎改革)을 거쳐 계몽기(啓蒙期)에 이르러서는 더욱 쇠미(衰微)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제후들은 민족을 단위로 하는 통일국가를 세워 국왕 밑에 집중함으로써, 중앙집권에 의한 절대주의국가(전제주의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등의 영향으로 왕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전제군주시대(專制君主時代)였다.


이 시대가 오게 되는 원인을 사회적인 면에서 보면, 첫째로 시민계급(市民階級)이 국왕과 결합하여 봉건계급(封建階級)과 대항하기 위함이었고. 둘째로, 경제적인 활동에 있어, 무역경제의 지배를 위하여 봉건제도를 벗어난 강력한 국가의 배경을 필요로 하였으며, 아울러 국민의 전체적인 복리(福利)를 위하여 강력한 국가의 보호와 감독에 의한 중상주의(重商主義) 경제정책이 요망된 데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복귀섭리(復歸攝理)로 본 역사발전의 입장에서 보면, 봉건시대(封建時代) 이후에는 하늘편의 군주사회(君主社會)가 이루어져야 했던 것인데, 이 시대의 교황과 국왕이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사회는 완성되지 못하고, 교황을 중심한 그 사회는 도리어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나온 노정을 따라 사탄편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로 전화되었던 것이다.


이제 가인형의 인생관을 중심한 공산세계(共産世界)와, 아벨형의 인생관을 중심한 민주세계(民主世界)를 이루어 나아가고 있는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전제군주사회의 귀추를 고찰하기로 하자.


마치 중세봉건사회(中世封建社會)가 히브리사상에도 헬라사상에도 한가지로 배치(背馳)되는 사회였기 때문에, 이 두 사상이 함께 그것을 타파하여, 가인 아벨 두형의 인생관에 입각한 두 형의 사회를 수립하였던 것처럼, 전제군주사회도 역시 종교개혁(宗敎改革) 이후의 기독교민주주의(基督敎民主主義)에 의한 신교(信敎)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아벨형 인생관의 목적 달성에도 배치되는 사회였었고, 또 그 사회는 그 안에 의연히 남아있던 봉건제도(封建制度)가 무신론자(無神論者)와 유물론자(唯物論者)들이 지도하는 시민계급의 발전을 막고 있어서 가인형 인생관의 목적 달성에도 배치되는 사회였었기 때문에, 이 두 형의 인생관이 함께 이 사회를 타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드디어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주주의에 입각한 공산(共産)과 민주(民主) 두 형의 사회를 형성한 것이다.


1. 가인형의 민주주의


가인형의 민주주의는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으로 인하여 형성되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논하기 위하여는 먼저 불란서혁명에 관한 것을 논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당시의 불란서는 가인형의 인생관으로 말미암아, 무신론(無神論)과 유물론(唯物論)으로 흘러가던 계몽사상(啓蒙思想)이 팽배한 시대에 있었다. 따라서 이렇듯 계몽사상에 물들어 있던 시민계급은, 절대주의(絶對主義)에 대한 모순을 자각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서 절대주의사회 안에 아직도 깊이 뿌리박고 있는 구제도(舊制度)의 잔해를 타파하려는 의식이 고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시민들이 1789년 계몽사상의 대조(大潮)에 의하여, 절대주의사회의 봉건적 지배계급을 타파하는 동시에, 제3계급(시민)의 자유평등과 해방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일어난 혁명이 곧 불란서혁명이었다.


이 혁명으로 인하여 '인권선언(人權宣言)'이 공표됨으로써 불란서의 민주주의는 수립되었었다. 그러나 불란서혁명으로 인한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가인형의 인생관을 세우기 위하여, 유물사상(唯物思想)으로 흘러간 계몽사상이 절대주의사회(絶對主義社會)를 타파하면서 출현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인형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몽사상의 주요인물들도 그러하지만, 불란서혁명의 사상가 디드로(Diderot 1713∼1784)나 달랑베르(d'Alembert 1717∼1783)등도 무신론 또는 유물론계의 학자들이었다. 이 혁명의 경위를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불란서의 민주주의는 개성의 자유와 평등보다도 전체주의(全體主義)에로 바뀌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와 같이 가인형의 인생관은 계몽사상(啓蒙思想)을 세워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을 일으킴으로써 가인형의 민주주의를 형성하였고, 이것이 신에게로 돌아가려는, 인간본성의 내적인 추구의 길을 완전히 막고 외적으로만 더욱 발전하여, 독일에서의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에서의 레닌주의로 체계화됨으로써, 마침내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를 형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2. 아벨형의 민주주의


영국이나 미국에서 실현된 민주주의(民主主義)는, 불란서의 대혁명(大革命)으로 인하여 실현된 민주주의와, 그 발단부터가 다르다. 후자는 가인형 인생관의 소산인 무신론 및 유물론의 주창자들이, 절대주의 사회를 타파하는 것으로써 실현한 가인형의 민구주의였음에 반하여, 전자는 아벨형 인생관의 결실체인 열광적인 기독교 신도들이, 신교(信敎)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절대주의와 싸워 승리함으로써 실현한 아벨형의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그러면 영(英)·미(美)에서는 어떻게 하여 아벨형의 민주주의를 수립하였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영국에서는 찰스 1세가 전제주의(專制主義)와 국교(國敎)를 강화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청교도(淸敎徒)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내의 타국(他國) 또는 신대륙(新大陸)으로 이동하였고, 일찌기 스코틀랜드에서는, 종교적인 압박을 받던 일부의 청교도들이 국민맹약(國民盟約)을 결의하고 국왕에 항거하였던 것이다(1640년).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의회의 핵심이었던 청교도들이 크롬웰(Cromwell 1599∼1658)을 중심하고 청교도혁명(淸敎徒革命)을 일으켰던 것이다(1642년), 그뿐 아니라 제임스 2세의 전제(專制)와 국교 강화가 극심하여지자, 그의 사위로서 네덜란드 총독으로 있었던 오렌지공 윌리암(William III 1650∼1702)은, 1688년에 군대를 거느리고 신교(信敎)의 자유와 민권(民權)의 옹호를 위하여 영국에 상륙하여 무혈로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윌리암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의회에서 상신한 '권리의 선언'을 승인하여 의회의 독립적인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이것이 영국 헌법의 기본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 혁명은 무혈로 성공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명예혁명(名譽革命)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영국에 있어서의 이혁명은, 외적으로 보면 물론 시민계급(市民階級)이 귀족 승려 등 대지주계급(大地主階級)으로부터 정치적인 자유와 해방을 얻으려고 한 데도 그 원인이 있었지만, 보다 더 주요한 원인은 그러한 혁명을 통하여 내적인 신교(信敎)의 자유와 해방을 얻으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전제주의(專制主義) 왕정하에서 탄압을 받고 있던 청교도(淸敎徒)들이 신교(信敎)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아메리카 신대륙을 찾아가서 1776년에 독립국가를 수립함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수립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영(英)· 미(美)에서 수립된 민주주의는 아벨형의 인생관을 중심하고 신교(信敎)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절대주의사회(絶對主義社會)를 개혁하려는 혁명으로써 수립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아벨형의 민주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되어 아벨형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세계를 형성하는 데 이르렀다.


II. 삼권분립의 원리적 의의


삼권분립사상(三權分立思想)은 절대주의(絶對主義)의 정치체제로 인하여, 국가의 권력이특정한 개인이나 기관에 집중하는 것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계몽사상파(啓蒙思想派)의 중진이었던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에 의하여 제창되었던 것인데, 그것은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 때 '인권선언'의 선포로써 실현되었다. 그러나 원래 이 삼권분립은 하늘편에서 이루려 했던 이상사회(理想社會)의 구조로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전노정이 그러하듯이, 이것 또한 사탄편에서 앞질러 비원리적(非原理的)인 원리형(原理型)으로 먼저 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이상사회의 구조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밝힌 바와 같이, 피조세계(被造世界)는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를 본(本)으로 하여 창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완성한 인간들로써 이루어지는 이상사회도 역시,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와 기능을 닮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체의 모든 기관이 두뇌의 명령에 의하여 기동(起動)하는 것과 같이, 이상사회의 모든 기관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의 명령에 의하여 영위되어야 하며, 또 두뇌로부터의 모든 명령이 척수(脊髓)를 중심한 말초신경(末梢神經)을 통하여 사지백체(四肢百體)에 전달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명령은 척수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와, 그를 중심한 말초신경에 해당되는 성도들을 통하여 사회 전체에 유루(遺漏)없이 미쳐져야 한다. 그리고 인체에 있어서의 척수를 중심한 말초신경은 한 국가의 정당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상사회(理想社會)에 있어서의 정당에 해당한 역능(役能)은,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들이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폐장(肺臟)과 심장(心臟)과 위장(胃腸)이 말초신경(末梢神經)을 통하여 전달되는 두뇌(頭腦)의 명령을 따라, 서로 상충이 없이 원만한 수수(授受)의 작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 3장기(三臟器)에 해당되는 이상사회의 입법(立法)·사법(司法)·행정(行政)의 3기관도 정당(政黨)에 해당되는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들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서로 원리적인 수수의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사지(四肢)가 두뇌의 명령을 따라, 인간의 생활목적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사지에 해당되는 경제기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상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체에 있어서 간장(肝臟)이 전신(全身)을 위하여 영양을 저축하는 것과 같이, 이상사회에 있어서도 항상 전체적인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저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인간의 사지백체(四肢百體)가 두뇌와 종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체(支體)들 사이에 자동적으로 횡적인 관계가 맺어져서, 불가분(不可分)의 유기체(有機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이상사회도 모든 사회인들이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횡적인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에,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같이하는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 있어서는, 남을 해치는 것이 바로 자기를 해치는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에, 범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또 복귀섭리(復歸攝理)가 이 사회구조를 어떻게 복귀하여 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서구에 있어서의 역사발전의 과정을 보면, 입법(立法)·사법(司法)·행정(行政)의 3권과 정당(政黨)의 기능을 통틀어 국왕 한 사람이 전담하여 오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변천하여 국왕이 3권을 장악하고, 교황을 중심한 교회가 정당과 같은 사명을 담당하던 시대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정치제도는 다시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에 의하여 입법·사법·행정의 3권으로 분립되었고, 정당이 뚜렷한 정치적인 사명을 가지게 되어, 민주주의 입헌정치체제(立憲政治體制)를 수립함으로써, 이상사회 제도의 형만은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내려오면서 정치체제가 변천해온 것은, 타락된 인간사회가 복귀섭리에 의하여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와 기능을 닮은 이상사회로 복귀되어 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되어 오늘날의 민주주의정체(民主主義正體)는 3권으로 분립되고 또 정당이 생겨남으로써, 드디어 인간 하나의 구조를 닮기에 이르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귀되지 않은 타락인간(墮落人間)과 같은 것이어서, 창조본연(創造本然)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곧 정당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으므로, 그것은 두뇌의 명령을 전달할 수 없게 된 척수(脊髓)와 그를 중심한 말초신경(末梢神經)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즉 헌법(憲法)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입법·사법·행정의 세 기관은 마치 신경계통이 끊어져 두뇌로부터 오는 명령에 감응할 수 없게 된 3장기와 같이 되어서, 그것들은 상호간에 질서와 조화를 잃어버리고 항상 대립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이상(再臨理想)의 목적은, 예수님이 오셔서 타락인간 하나의 구조를 닮고 있는 현재의 정치체제(政治體制)에, 완전한 중추신경(中樞神經)을 이어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그 본연의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도록 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III. 산업혁명의 의의


하나님이 창조이상(創造理想)은 단지 죄 없는 사회를 이루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祝福)의 말씀대로(창 1 : 28) 피조세계에 숨어 있는 원리를 찾아 과학을 발달시킴으로써, 행복한 사회환경까지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전편에서 논한 바와 같이, 타락인간의 영육(靈肉) 양면의 무지에 대한 극복은, 종교와 과학이 각각 담당해 가지고 이상사회(理想社會)를 복귀해 나왔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終末)에는 영적인 무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말씀이 나와야 하고, 육적인 무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도록 과학이 발달되어, 이상사회를 이룰 수 있는 전 단계의 과학세계를 건설해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 영국의 산업혁명(産業革命)은 어디까지나 이상사회의 생활환경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에서 일어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상사회의 경제기구(經濟機構)도 완성된 인체의 구조와 같아야 하므로,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생산과 분배와 소비는 인체에 있어서의 위장과 심장과 폐장과 같이 유기적인 수수(授受)의 관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생산과잉(生産過剩)으로 인하여 파괴적인 판로경쟁(販路競爭)을 하거나, 편파적인 분배에 의하여 전체적인 생활 목적을 그르치는 축적이나 소비를 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평하고도 과부족(過不足) 없는 분배와,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어야 된다.


그런데 산업혁명에 의한 다량생산은 영국으로 하여금 상품시장과 원료공급지로서의 광대한 식민지를 급속도로 개척케 하였었다. 그리하여 산업혁명은 이상사회를 위한 외적인 환경 복귀뿐만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한 광범한 판도를 조성함으로써 내적인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사명도 하게 하였던 것이다.


IV. 열국의 강화와 식민지 분할


문예부흥(文藝復興) 이후 가인 아벨의 두 형으로 갈라져 성숙하여 온 인생관은, 각각 두 형의 정치혁명(政治革命)을 일으키어 두 형의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수립하였고, 이 두 형의 민주주의는 다 같이 영국의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으면서 급속도로 강화되어, 민주(民主)와 공산(共産) 두 계열의 세계를 형성해 가게 되었다.


즉 산업혁명에 뒤이어, 비약적인 과학의 발달에 따라 일어난 공업의 발달은 생산과잉(生産過剩)의 경제사회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과잉한 생산품의 판로와 공업원료의 획득을 위한 신지역(新地域)의 개척을 요하게 되어, 급기야 세계 열강은 식민지 쟁탈전을 계속하면서 급속도로 강화되어 갔다. 이와 같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의 흐름과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은, 정치적으로 이 세계를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분립케 하였다.


V. 문예부흥에 따르는 종교 정치 및 산업의 혁명


가인형인 헬라사상의 반중세적 복고운동(反中世的 復古運動)은, 인본주의(Humanism)를 낳아 문예부흥(Renaissance)을 일으켰고, 이것이 더 사탄편으로 발전하여, 제2의 문예부흥사조(文藝復興思潮)라고 볼 수 있는 계몽사상(啓蒙思想)을 낳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 계몽사상이 더욱 사탄편으로 성숙하여, 제3의 문예부흥사조라고 볼 수 있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을 낳아 공산주의사상(共産主義思想)을 성숙케 하였다.


이와 같이 사탄편에서 하늘의 섭리를 앞질러 먼저 이루어 나아감에 따라, 종교(宗敎), 정치(政治), 산업(産業) 각 방면에 있어서도 3차의 혁명이 따라오게 된다. 즉 제1차 문예부흥(文藝復興)에 뒤이어 루터를 중심한 제1차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있었으며, 제2차 문예부흥에 뒤이어 종교계에서는 웨슬레, 폭스, 스웨덴보리 등을 중심한 새로운 영적 운동이 말할 수 없는 박해 가운데서 일어났던 것이니, 이것이 제2차 종교개혁운동이었다. 그러므로 제3차 문예부흥에 뒤이어서 제3차 종교개혁이 있게 될 것은, 역사발전 과정으로 보아 필지(必至)의 사실이라 하겠다. 사실상 오늘의 기독교(基督敎)의 현실은 그 개혁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도, 3단계의 변혁과정이 있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즉 제1차 문예부흥과 제1차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중세봉건사회(中世封建社會)가 붕괴되었고, 제2차 문예부흥과 제2차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가 붕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3차 문예부흥에 의한 정치혁명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사회(共産主義社會)가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장차 올 제3차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하늘편의 민주세계가 이념적으로 사탄편의 공산세계를 굴복시킴으로써, 이 두 세계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지상천국(地上天國)으로 통일될 것이다.


한편 우리는 종교와 정치의 변혁에 따르는 경제개혁도 3단계의 과정을 거치어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증기(蒸氣)에 의한 공업발달로 제1차 산업혁명(産業革命)이 영국에서 일어났고, 이어서 전기와 가솔린에 의한 제2차 산업혁명이 선진제국(先進諸國)에서 일어났었다. 이제는 원자력(原子力)에 의한 제3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상세계의 행복된 사회환경이 세계적으로 건설될 것이다. 이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에 있어서의 3차의 문예부흥에 따르는 종교 정치 및 산업 등 3분야에 걸친 3차 혁명은, 3단계의 발전법칙에 의한 이상사회(理想社會) 구현에의 필연적 과정인 것이다.


제4절 세 계 대 전


I. 탕감복귀섭리로 본 세계대전의 원인


전쟁이란 언제나 정치, 경제, 사상, 등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원인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반드시 또 내적인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행동에 내외 양면의 원인이 있는 것과 같다. 즉 인간의 행동은, 당면한 현실에 대응하려는 외적인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하여 결정됨은 물론이거니와,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지향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려는 내적인 자유의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에 대한 선악(善惡)을 그 외적인 원인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일어나는, 행동과 행동의 세계적인 부딪침이 곧 세계대전(世界大戰)이기 때문에, 여기에도 내외 양면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세계대전을 정치, 경제, 사상 등 그 외적인 원인만을 중심하고 다루어 가지고는, 그에 대한 섭리적인 의의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탕감복귀섭리(蕩減復歸攝理)로 본 세계대전(世界大戰)의 내적인 원인은 무엇일 것인가?


첫째, 주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탄의 최후의 발악으로 인하여 세계대전은 일어나게 된다. 위에서도 이미 보아 온 바와 같이, 인간 시조(始祖)가 타락됨으로 인하여 원래 하나님이이루시려던 원리세계(原理世界)를 사탄이 앞질러 원리형(原理型)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로 이루어 나왔고, 하나님은 그 뒤를 따라 나오시면서, 사탄 주관하의 이 비원리세계를 빼앗아 선의 판도를 넓히심으로써 점차적으로 원리세계를 복귀하는 섭리를 해 나오셨다. 따라서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는 언제나 참것이 오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먼저 오리라 하신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그런데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惡主權)의 역사는 재림주님이 나타나심으로써 그 종말을 짓고, 하나님을 중심한 선주권(善主權)의 역사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므로, 그때에 사탄은 최후의 발악을 하게 된다.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애급(埃及)을 떠나려는 이스라엘 선민(選民)에 대하여, 사탄은 바로를 시켜서 최후의 발악을 하였기 때문에, 하늘편에서는 3대 기적(三大奇蹟)으로써 그를 치고 떠났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의 종말기에 있어서도,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는 하늘편에 대하여 사탄이 최후의 발악을 하기 때문에, 이것을 3차에 걸쳐 치는 것이 3차의 세계대전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3대 축복(三大祝福)을 이룬 형의 세계를 사탄이 앞서 비원리적으로 이루어 왔으므로, 이것을 복귀하는 세계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시기 위하여 세계대전(世界大戰)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의 개성을 완성할 것과 자녀를 번식할 것과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주관할 것 등의 3대 축복을 하셨다(창 1 : 28). 따라서 인간은 이 축복을 이룸으로써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세워야 할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러한 축복을 하셨던 것이므로, 그 인간이 타락되었다고 해서 이 축복을 파기하실 수는 없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사탄을 중심하고 그 축복형의 비원리세계를 앞질러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는 사탄을 중심한 개성, 사탄을 중심한 자녀번식, 사탄을 중심한 피조세계 주관 등 3대 축복 완성형의 비원리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3대 축복을 복귀하는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는, 사탄을 중심한 3대 축복 완성형의 비원리세계를 소생(蘇生)·장성(長成)·완성(完成)의 3단계에 걸쳐서 치는 3차의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예수님의 3대 시험(三大試驗)을 세계적으로 넘게 하기 위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예수님의 노정은 바로 성도들이 걸어야 할 노정이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당하신 3대 시험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전 인류가 예수님의 이 3대 시험을 3차에 걸쳐 세계적으로 넘어가는 것이 바로 이 3차에 걸친 세계대전인 것이다.


넷째, 주권복귀(主權復歸)를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인간이 타락되지 않고 성장기간(成長期間)의 3단계를 거쳐서 완성되었더라면 하나님 주권의 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타락세계(墮落世界)를 가인 아벨 두 형의 세계로 분립한 다음, 아벨형의 하늘세계가 가인형의 사탄세계를 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세계적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여, 하나님 주권의 세계를 찾아 세우는 최종의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3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3차의 세계대전이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대전은 종적인 섭리노정(攝理路程)에서 주권복귀를 위하여 있었던 모든 싸움의 목적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하는 최종적인 전쟁인 것이다.


II. 제 1차 세계대전


1.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섭리적인 개요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인하여 전제군주정체(專制君主政體)는 붕괴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일어난 산업혁명(産業革命)은 봉건주의사회(封建主義社會)를 자본주의사회(資本主義社會)로 이끌어, 마침내는 제국주의사회(帝國主義社會)가 오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은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아벨형의 민주주의에 의하여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정체(民主主義政體)와, 가인형의 민주주의에 의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반하는 전체주의정체(全體主義政體)와의 전쟁이었으며, 한편 또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하늘편 제국주의와사탄편 제국주의와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대전은 일면 구미제국(歐美諸國) 중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후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植民地) 쟁탈을 위하여 벌인 전쟁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을 사상적인 면에서 보면, 당시의 기독교를 박해하던 회회교국가(回回敎國家)인 터어키 및 이것을 지지하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가인형의 국가군과, 주로 기독교를 신봉하던 영(英)·미(美)·불(佛) 등 아벨형의 국가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1차 대전은 아벨형 인생관의 목적을 실현해야 할 민주주의가, 소생적(蘇生的)인 승리의 기반을 조성하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2. 하늘편과 사탄편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하늘편과 사탄편은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방향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된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방향과 동일한 방향을 취하거나, 간접적으로나마 이 방향에 동조하는 입장을 하늘편이라 하고,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사탄편이라 한다. 그러므로 하늘편이냐 사탄편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나 양심의 판단과 반드시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죽인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은 누구나 악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선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아무 이유도 없이 가나안 땅을 침입하여 수많은 이방민(異邦民)을 전멸시킨 사실도,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자리에서 보면 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보면 선이었던 것이다. 가나안 민족 중에 이스라엘 민족보다 훨씬 더 양심적인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당시의 그들은 일률적으로 사탄편이었고, 이스라엘은 일률적으로 하늘편이었던 까닭이다.


더 나아가 이 예를 종교면(宗敎面)에서 들어 보기로 하자. 모든 종교는 그 목적이 동일하게 선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모두 하늘편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가 가는 길을 방해하게 될 때, 그 종교는 사탄편에 속하게 된다. 또 각 종교는 시대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교가 그의 사명기(使命期)가 지난 후, 다음 시대의 새로운 사명을 담당하고 나타난 종교의 길 앞에 장애가 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종교는 사탄편이 된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유대교나 그 민족은 모두 하늘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유대교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오셨던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들은 과거에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겨왔다고 하더라도, 그 날부터 사탄편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근세(近世) 이후에 있어서는, 아벨형의 인생관의 계통은 모두 하늘편이요, 가인형의 인생관의 계통은 모두 사탄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물론자(唯物論者)는 가인형의 인생관의 결실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양심적이고 남을 위해 헌신을 한다고 해도 그는 사탄편이다. 따라서 공산세계는 사탄편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신앙의 자유가 허여(許與)되어 있는 민주세계는, 아벨형의 인생관으로 존립하는 세게이기 때문에 하늘편이 된다.


전편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기독교(基督敎)는 모든 종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종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는 중심 종교로 세워졌기 때문에,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섭리의 목적을 지향하는 기독교의 길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탄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를 박해하거나, 또는 그의 발전을 직접 혹은 간접으로 방해하는 국가는 모두 사탄편이 된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에 있어서, 영(英)·미(美)·불(佛)·로(露) 등 연합국(聯合國) 측의 주동국가들은 기독교국가일 뿐 아니라, 회회교국(回回敎國)인 터어키 내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 기독교도를 해방하려 했던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하늘편이 되고,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동맹국(同盟國)측의 주동국가들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회회교국가였던 터어키를 지지하였으므로, 그것들은 모두 터어키와 함께 사탄편이었던 것이다.


3. 복귀섭리로 본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


복귀섭리(復歸攝理)로 보아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이 일어나게 된 내적인 원인의 그 첫째는, 하나님의 3대 축복(三大祝福)을 복귀하는 소생적(蘇生的)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계적으로 세우려는 데 있었다.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탄은 하나님이 아담을 중심하고 이루시려던 세계와 유사한 형의 세계를 앞질러 이루어 나왔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서는 한 때 반드시 사탄편 아담형의 인물을 중심하고, 3대 축복의 소생급 완성형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가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하늘편에서는 이 세계를 쳐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그 축복을 완성한 원리세계(原理世界)를 복귀하는 소생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을 도발한 독일의 카이젤은, 사탄편 아담의 소생급(蘇生級) 개성완성형의 인물로서, 범게르만주의를 주창함으로써 자녀 번식의 형을 이루었고 세계(世界)제패(制覇)의 정책을 세움으로써 만물 주관의 형을 이루어, 사탄을 중심한 3대 축복(三大祝福)의 소생급 완성형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늘편이 이러한 사탄편을 치고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 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는 소생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세계적으로 세우기 위하여 제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둘째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첫?시험을, 하늘편 지상인으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넘게 하기 위하여,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하셨던 시험을 중심하고 보면, 하늘편에서는 제1차 대전에 승리하여 하나님의 제1축복(第一祝福)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첫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돌로 표시된 자신을 찾아 세워 개성복귀(個性復歸)의 기대를 조성하셨던 것과 같이, 하늘편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사탄편 세계와 그 중심이 망한 반면에, 하늘편 세계가 세워지고 그 중심인 재림주(再臨主)님이 탄생하시어, 개성을 복귀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주권복귀(主權復歸)의 소생적(蘇生的)인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후편 제4장 제7절 II 6에서, 전제주의사회(專制主義社會)를 타파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복귀하기 위한 최종적인 정체(政體)로서, 민주주의정체(民主主義政體)가 나오게 되었다고 논하였거니와, 결과적인 사실이 보여준 바와 같이 제1차 대전에서 하늘편 국가가 승리하여 정치 판도를 크게 넓힘으로써 세계를 기독교화(基督敎化)하고, 하늘편의 광범하고도 확고한 정치 및 경제의 기대를 조성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소생적인 기대를 확립함과 동시에 하늘편 주권복귀의 소생적인 기대를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4. 복귀섭리로 본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에서 하늘편이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3대 축복 (三大祝福)을 세계적으로 복귀하기 위한 소생적(蘇生的)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게 되었고,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시험을 세계적으로 넘는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제일축복(第一祝福)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웠으며, 여기에서 민주주의가 소생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어 하늘편 주권복귀(主權復歸)의 소생적인 기대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사탄편 세계와 그 세계의 왕(王)으로 군림했던 카이젤이 패망한 반면에, 하늘편 세계의 소생적인 승리의 기대가 세워짐으로써, 하늘편 세계의 왕으로 오실 재림주님이 탄생하실 수 있는 기대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에 뒤이어 사탄편의 재림주 상징형인 스탈린을 중심한 공산세계가 일어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재림주님은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共義主義)의 지상천국이상(地上天國理想)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시므로, 사탄편에서는 하늘편의 이러한 이상을 앞질러 먼저 이루기 위하여 사탄편 재림주형의 인물을 중심하고 지상천국형의 세계를 이루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이 하늘편 승리로 끝남으로써, 메시아 재강림(再降臨)의 기대가 조성되었고, 그 때부터 재림역사(再臨役事)의 소생기(蘇生期)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III. 제2차 세계대전


1.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섭리적인 개요


이미 중세 이후의 역사에서 보아 온대로,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근본정신은 아벨형 인생관의 목적을 실현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인간본성의 내외 양면의 성향을 따라 필연적으로 창조이상(創造理想)의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2차 세계대전(第二次世界大戰)은, 제1차 대전으로 인하여 소생적(蘇生的)인 승리의 기대 위에 서게 된 민주주의가, 인간 본성이 지향하는 길을 막는 전체주의(全體主義)와 싸워서, 그 장성적(長成的)인 승리의 기반을 조성하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2. 전체주의란 무엇인가?


1930년대에 있어서 경제공황(經濟恐慌)이 세계적으로 휘몰아쳤을 때, 특히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기 어려운 고립된 환경에 처해 있었던 독(獨)·일(日)·이(伊) 등의 국가들은, 그 난경(難境)을 타개하는 길을 전체주의에서 찾으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 전체주의란 무엇인가?


전체주의는 근대국가(近代國家)의 민주주의 정치사상(政治思想)의 기본인 인간의 개성에 대한 존중과 언론(言論), 출판(出版), 집회(集會), 결사(結社)의 자유와,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 및 의회제도(議會制度) 등을 부정하고, 민족국가의 '전체'만을 궁극의 실재로 봄으로써, 개인이나 단체는 민족 국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이념(政治理念)이다. 그러므로 이 제도하에서의 자유는 개인이 주장하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고, 전체 앞에 바쳐야 할 하나의 의무요 또한 희생으로 정의된다.


전체주의(全體主義)의 지도원리는 모든 권위를 다수(多數)에 두지 않고 한 사람의 지배자에게 둔다. 그리하여 그 지배자의 의지로써 국가민족의 이념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지도이념에 의한 전체주의 정치체제의 실례를 들어 보면, 이태리에 있어서의 뭇솔리니, 독일에 있어서의 히틀러, 일본에 있어서의 군벌(軍閥)에 의한 독재정체(獨裁政體)들이 각각 그것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3. 제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의 하늘편 국가와 사탄편 국가


제2차 세계대전(第二次世界大戰)은 민주주의로 결탁된 미(美)·영(英)·불(?)의 하늘편 국가와, 전체주의로 결탁된 독(獨)·일(日)·이(伊)의 사탄편 국가와의 대전(對戰)이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전자는 하늘편이고 후자는 사탄편인가? 전자는 아벨형의 인생관을 중심으로 하여,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최종단계의 정치이념으로 세워진 민주주의를 근본이념으로 하는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하늘편이었고, 후자는 그 정치이념이 가인형의 인생관을 중심한 반민주주의적(反民主主義的)인 전체주의국가(全體主義國家)들이었기 때문에 사탄편이었다. 그리고 또 전자는 기독교(基督敎)를 지지하는 국가들이었고, 후자는 반기독교적(反基督敎的)인 입장에 섰었던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각각 하늘편과 사탄편으로 구별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 내용을 좀더 밝혀 보기로 하자. 당시대에 있어서 추축국(樞軸國)의 중심이었던 독일은 인간의 기본 자유를 박탈하였고, 그의 사상통제는 종교분야에까지 미쳤던 것이다. 즉 히틀러는 로마 교황(敎皇)과는 별도로 협약(協約)을 맺고, 엄중한 게르만의 원시적 종교사상을 도입하여 민족적 종교를 창설한 후, 그 전국 주교(主敎) 밑에 모든 신교(新敎)를 통할하려 하였기 때문에, 신교는 물론 구교(舊敎)까지 이에 강력한 반대운동을 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히틀러는 6백만의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다.


그리고 대전(大戰) 당시의 일본의 군벌(軍閥)은 한국의 각 교회에 일본 신도(神道)의 가미다나(神棚)를 강제로 설치케 하는 한편, 기독교인(基督敎人)들을 일본 신사(神社)에 강제로 끌어내어 참배케 하였고, 이에 불응하는 신도들을 투옥 학살하였다. 특히 일본의 속박을 피하여 자유를 찾아 만주에 이민(移民)한 한국 기독교인들을 도처에서 집단 학살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대전 말기에 이르면서 그들이 강행하였던 한국 기독교 말살정책은 실로 극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태리는 사탄편에 섰던 독일과 하나되어 추축국가가 되었으며, 뭇솔리니는 국민사상을 통합하기 위하여 고의로 구교(舊敎)를 국교로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역행(逆行)하는 길을 걸었다. 이러한 근거에서 당시의 독(獨)·일(日)·이(伊)는 함께 사탄편의 국가들로 규정되는 것이다.


4. 하늘편과 사탄편이 각각 3대국으로 대립한 이유


상세한 것은 다음 항목에서 논술될 것이나, 제2차 세계대전(第二次世界大戰)은 예수님을 중심하고 이루려다가 이루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3대 축복(三大祝福)을 복귀하는 장성적(長成的)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기 위하여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의 3대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담, 해와, 천사장(天使長)의 3존재가 타락된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3대 축복의 복귀에도 그것들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한 3존재의 관여가 필요하기 때문에, 후아담으로 오셨던 예수님과 해와의 신성(神性)으로 오신 성신(聖神)과(전편 제7장 제4절 I)천사의 3존재가 합하여서 비로소 영적 구원섭리를 이루시어, 하나님의 3대 축복을 영적으로 복귀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중심한 3대 축복을 복귀하기 위한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세워야 할 제2차 세계대전도, 아담, 해와, 천사장를 상징하는 하늘편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동일한 형을 갖춘 사탄편 국가들과 싸워 이겨서, 그것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고 있는 사탄은 이 섭리에 앞질러 사탄편 아담, 해와, 천사장형의 국가들을 먼저 단합하게 하여, 하늘편의 그러한 형의 국가들에게 공세를 취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남성국가로서 하늘편 아담을, 영국은 여성국가로서 하늘편 해와를, 그리고 불란서(佛蘭西)는 중간적인 국가로서 하늘편의 천사장을 각각 상징하였고, 독일은 남성국가로서 사탄편 아담을, 일본은 여성국가로서 사탄편 해와를, 그리고 이태리는 중간적인 국가로서 사탄편의 천사장을 각각 상징하였던 것이다. 그 앞서 제1차 세계대전에 있어서의 미(美)·영(英)·불(?)과 독(獨)·오(墺)·토(土)도 역시 각각 이러한 유형으로 편성된 소생적(蘇生的)인 상징형으로서의 하늘편과 사탄편의 국가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제2차 대전에 있어서 사탄편 국가인 소련은 왜 하늘편에 가담하게 되었던가? 교황을 중심한 서구의 중세사회(中世社會)가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것을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의 세계로 분립하여, 공산(共産)과 민주(民主)의 두 세계를 이루어 나아가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런데 봉건사회(封建社會)나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나 제국주의사회(帝國主義社會)는 모두 이러한 섭리를 이루는 데 있어서, 하늘편이 가는 길을 막는 동시에, 사탄편이 가는 궁극의 길도 막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하늘편과 사탄편이 합하여 그 사회를 타파하게 되었던 것이다.


복귀섭리(復歸攝理)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발전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앞질러 이루어 나아가는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사탄의 목적을 지향하여 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사탄세계에 있어서도 낡은 사회는 진보적인 사회를 이루는 데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청산하는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추세에 의하여, 제2차 세계대전(第二次世界大戰)에 있어서의 전체주의(全體主義)는 하늘편에 있어서 그러한 것처럼, 사탄편이 가는 길에 있어서도 역시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탄편이 공산주의세계를 이루는 것을, 탕감복귀섭리상 일시적으로나마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소련이 하늘편 국가와 협력하여 전체주의국가를 타도함으로써, 공산세계가 조속히 그로서의 결실을 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는 물과 기름같이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5. 복귀섭리로 본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복귀섭리로 보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 내적인 원인의 그 첫째는, 하나님의 3대 축복(三大祝福)을 복귀하는 장성적(長成的)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계적으로 세우려는 데 있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제2차로 후아담 된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3대 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이것을 영적으로만 이루셨던 것이다. 한편 사탄은 또 예수님이 이루시려던 그 세계와 비슷한 형의 세계를 앞질러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사탄편 예수형의 인물을 중심하고 3대 축복의 장성급 완성형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가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 세계를 쳐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그 축복을 완성한 원리세계(原理世界)로 복귀하는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사탄편 예수형의 인물이 바로 히틀러였다. 그러므로 히틀러는 그 사상이나 그 독신생활(獨身生活)이나 그의 비참한 죽음이나 또는 행방불명(行方不明)된 그의 시체 등 모든 면에 있어서, 그 뜻을 반대로 했을 뿐 예수님의 그것들과 유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한 독일의 히틀러는 사탄편 아담의 장성급 개성완성형의 인물로서 범게르만주의를 주창함으로써 자녀 번식의 형을 이루었고, 세계적화(世界赤化)의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만물 주관의 형을 이루어, 사탄을 중심한 3대 축복의 장성급 완성형의 비원리세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함으로써, 3대 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는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둘째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둘째 시험을, 하늘편 지상인으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넘게 하기 위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하셨던 시험을 중심하고 보면, 하늘편에서는 제2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둘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자녀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던 것과 같이, 하늘편 세계가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장성적인 기대를 조성하여, 하늘편 인간들이 그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하였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주권복귀(主權復歸)의 장성적(長成的)인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제2차 세계대전(第二次世界大戰)이 오게 되었던 것이다. 제1차 대전이 하늘편의 승리로 돌아감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세계는 그 소생적(蘇生的)인 기반을 가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가인형의 세계를 이루어 나오던 사탄편에서도 제1차 대전이 끝나자 제국주의(帝國主義)를 극복하고, 공산주의세계의 소생적인 기반을 닦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제2차 대전은 그 결과적인 사실이 보여 준 바와 같이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를 완전히 분리시켜 각각 그 장성적인 기반을 닦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세계가 이와 같이 그 장성적인 기반을 가지게 됨에 따라서, 하늘편 주권복귀는 그 장성적인 기대를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6. 복귀섭리로 본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 하늘편의 승리로 끝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3대 축복(三大祝福)을 세계적으로 복귀하기 위한 장성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울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시험을 세계적으로 넘는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웠으며, 또 민주주의세계(民主主義世界)가 장성적인 기반을 닦게 됨으로써 주권복귀의 장성적인 기대를 조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탕감복귀(蕩減復歸)의 원리로 보아, 사탄편 예수형의 인물인 히틀러와 그 나라가 망하고, 사탄편 재림주형(再臨主型)의 인물인 스탈린을 중심한 공산세계(共産世界)가 세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나타나게 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영적인 왕국을 건설해 나아가던 시대는 지나가고 재림하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계 21 : 1∼7) 건설할 때가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2차대전(二次大戰)이 끝난 후부터는 재림역사(再臨役事)의 장성기(長成期)로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예수 재림에 관한 계시를 받아 신령역사(神靈役事)는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모든 기성종교(旣成宗敎)는 더욱 혼돈되고 분열됨으로써 세속적으로 흘러, 종교적인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최종적인 새 진리에 의하여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하나님의 종국적인 섭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하나의 말세적인 현상인 것이다.


IV. 제3차 세계대전


1. 제3차 세계대전은 기필코 일어나게 될 것인가


하나님은 원래 인간 시조(始祖)를 창조하시고 그에게 세계를 주관하라고 축복하셨기 때문에(창 1 : 28), 사탄이 타락인간(墮落人間)을 앞세워 가지고 먼저 이 축복을 완성한 형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를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반면에 하나님은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의하여 그 뒤를 따라 나오시면서 그것을 하늘편으로 빼앗아 넘기는 역사(役事)를 해오셨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종말에는 사탄편도 하늘편도 모두 세계를 주관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민주(民主)와 공산(共産)의 두 세계가 양립(兩立)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두 세계의 최종적인 분립과 통합을 위하여 세계대전(世界大戰)은 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제1차, 제2차의 대전은 세계를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분립하기 위한 싸움이었으므로, 다음에는 이 분립된 두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싸움이 와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제3차대전(第三次大戰)이다. 그러므로 제3차 대전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 싸움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이다.


첫째는 무기로써 사탄편을 굴복시켜 통일하는 길이다. 그러나 통일된 후에 와야 할 이상세계(理想世界)는 온 인류가 다 같이 기뻐하는 세계여서, 이 세계는 원수를 무기로써 외적으로만 굴복시켜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내적으로도 굴복시켜서 충심으로 기뻐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전무결한 이념(理念)이 없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의 둘째 길은 무기로 인한 외적인 싸움을 하지 않고, 전적으로 이념에 의한 내적인 싸움으로써 곧장 사탄세계를 굴복시켜 통일하는 길이다. 인간은 이성적(理性的)인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이성으로 굴복하고 이성으로 하나될 때에만 완전한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싸움의 길 중에서 어느 길에 의하여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責任分擔) 수행 여부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이다. 그러면 이 길에 필요한 새 세계의 이념은 어디서 나오게 될 것인가?


인류를 하나의 이상세계(理想世界)에로 인도할 수 있는 이념은, 가인형의 인생관으로 세워진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에서 나올 리는 만무한 것이다. 왜냐하면 가인형의 인생관은 인간 본성의 내적인 성향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이념은 반드시 아벨형의 인생관으로 세워진 민주주의세계(民主主義世界)에서 나와야 할 것인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바 민주주의세계의 어떠한 기존 이념도, 공산주의의 이념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이념은 기필코 민주주의세계에서 새로이 나오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새로운 이념이 나오기 위하여는 새로운 진리(眞理)가 나와야 할 것이니, 이 새로운 진리가 바로 아벨형의 인생관의 근본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의 근본이 될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시대를 따라 보다 더 새로운 진리를 찾아 나온 역사발전 과정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이러한 새로운 진리가 나오게 되면, 그것은 많은 인간들이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어온 낡은 것과 상충하게 될 것이므로, 오늘의 민주주의세계에 있어서도 또다시 가인 아벨의 두 입장으로 분립되어 서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진리가 민주주의세계에서 승리의 기반을 가지게 되고, 더욱 나아가 공산주의의 이념을 굴복시킬 때에, 마침내 하나의 진리에 의한 하나의 세계는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이 새로운 진리를 주시어 온 인류를 하나의 이념으로 통합하시려는 섭리(攝理)를 사탄이 먼저 알고, 자기를 중심하고 인류를 통합하려고 거짓 것을 참것인 양 내놓은 사탄편 진리가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론적인 근거를 세워 영적인 존재를 말살하려 한다. 이러한 유물론의 입장은 신(神)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려 하다가, 결과적으로 사탄 자신도 없다는 논리를 스스로 뒤집어 쓰지 않을 수 없는 자멸(自滅)의 경지에 빠지고 말았다. 더욱이 사탄은 역사의 종말(終末)을 알고 있으므로 자신이 멸망할 것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결국은 사탄 자신이 섬김을 받지 못할 때가 올 것을 상정하여,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 신을 부정하고 나선 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세계(民主主義世界)에서 그 이론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진리를 내놓지 못하는 한, 하늘편은 언제나 사탄의 이론적인 공세를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하늘편에서 새로이 완성적인 진리를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복귀섭리사적(復歸攝理史的)인 근거가 있는 것이다.


2.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섭리적인 개요


제3차 대전(第三次大戰)은 복귀섭리를 시작하신 이래, 최종적으로 민주세계(民主世界)로 하여금 공산세계(共産世界)를 굴복시킴으로써 이상세계를 복귀하게 하시려는 전쟁이다. 복귀섭리의 관점에서 보면, 제1차 대전까지 하늘편 세계에서는 식민지(植民地)를 세계적으로 확보함으로써, 복귀섭리를 위한 정치와 경제의 판도를 넓혀 민주주의의 소생적(蘇生的)인 기대를 세웠고, 제2차 대전으로는 민주주의의 장성적(長成的)인 기틀을 세계적으로 수립함으로써, 민주세계의 판도를 공고히 하였다. 이제 제3차 대전으로는 새로운 진리에 의하여 완전한 아벨형의 인생관을 세움으로써, 민주주의의 완성적(完成的)인 기대를 조성해야 되며, 이 기대 위에서 온 인류를 하나의 세계에로 이끌어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3차 세계대전은,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역사노정에서 3단계까지 연장하면서 하늘 뜻을 세우려다가 사탄에게 내주었던 모든 것을, 역사의 종말기에 이르러 하늘편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최종적인 전쟁인 것이다.


3. 복귀섭리로 본 제3차 세계대전의 원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제3차 대전(第三次大戰)이 무력에 의하여 종결될 것인가, 혹은 이념의 싸움으로 끝날 것인가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를 받드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 수행 여하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이지만, 여하간 어떠한 길로든지 세계적인 싸움이 한 번 더 있어야 할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면 복귀섭리로 보아 제3차 세계대전이 오게 되는 내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그 첫째는, 하나님의 3대 축복(三大祝福)을 복귀하는 완성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계적으로 세우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결국 영적으로만 이루어졌으므로, 예수님은 다시 지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3대 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영육(靈肉) 아울러 복귀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사탄은 또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셔서 이루시려는 세계와 유사한 형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를 앞질러 이루어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는 반드시 사탄편 재림주형(再臨主型)의 인물을 중심하고, 3대 축복을 복귀한 형의 비원리세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편에서 사탄을 중심한 이 세계를 쳐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 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는 완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사탄편 재림주형(再臨主型)의 인물이 바로 스탈린이었다. 따라서 스탈린은 사탄편 개성완성형의 인물로서, 민주세계에 대항하여 농어민(農漁民), 노동자의 대동단결(大同團結)을 주창함으로써 자녀 번식의 형을 이루었고, 세계 적화(世界赤化)의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만물 주관의 형을 이루어, 3대 축복(三大祝福)을 완성한 형의 공산세계를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세계는 장차 올 하나님 중심의 공생공영공의주의세계(共生共榮共義主義世界)를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놓은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셋째 시험을, 하늘편 지상인(地上人)으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넘게 하기 위하여 제삼차대전(第三次大戰)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하셨던 시험을 중심하고 보면, 하늘편에서는 제3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삼축복(第三祝福)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셋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만물에 대한 주관성 복귀의 기대를 조성한 것과 같이, 하늘편이 제3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피조세계(被造世界) 전체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주권복귀(主權復歸)의 완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제3차 대전이 있어야 한다. 하늘편에서 제3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공산주의세계를 괴멸하고 모든 주권을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하여 천주주의(天宙主義)의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4. 복귀섭리로 본 제 3차 세계대전의 결과


하나님은 일찌기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세워 복귀섭리(復歸攝理)를 완성하려 하셨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인하여 인류죄악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려는 선악(善惡)의 분립역사는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가정, 종족, 사회, 민족, 국가적인 것을 거쳐서 세계적인 것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내려오셨다.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최종적 역사인 3차의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3단계까지 연장을 거듭하여 온 섭리노정(攝理路程)의 전체를 탕감복귀하시려는 것이다. 태초(太初)에 인간조상은 사탄의 유혹의 말에 끌려 넘어 감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심정(心情)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한 내적인 영적 타락과 외적인 육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복귀섭리는 타락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에 대한 심정을 복귀하고, 영육(靈肉) 아울러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혈통을 다시 이어받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후편 제2장 제3절 III 2 참조).


이제 3차에 걸친 세계대전에서의 하늘편 승리는, 이러한 복귀섭리의 모든 기대(基臺)를 완전히 탕감복귀함으로써, 인간이 타락된 이후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하나님이 이루려 하셨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이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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