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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장 재 림 론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8-10-20 12:56     조회 : 4485     트랙백 주소

예수님은 재림(再臨)하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마 16 : 27).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천사(天使)도 예수님도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마 24 : 36). 그러므로 지금까지 예수님이 언제 어떻게 어디로 오실 것인가 하는 데 대하여는, 알려고 하는 것조차 무모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속하여 말씀하신 바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신 사실과,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신 말씀을 종합하여 보면, 그 날과 그 때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재림에 관한 모든 비밀을 반드시 어떤 선지자(先知者)에게 알려 주시고야 역사(役事)하시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도둑 같이 오시겠다고(계 3 : 3) 말씀하신 바 있지만, 그 반면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을 보면, 빛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도둑같이 임하지 못하시리라고 하신 말씀도 있다.


예수님의 초림(初臨) 때에 되어진 일을 보아도, 예수님은 어둠 가운데 있었던 제사장(祭司長) 교법사(敎法師)들에게는 도둑같이 임하셨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빛 가운데 있었던 세례요한의 가정에게는 그의 탄생에 관한 것을 미리부터 알려 주셨고, 또 그가 탄생하셨을 때에는 동방박사(東方博士)와 시므온, 안나, 그리고 목자(牧者)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21장 34절 내지 36절에, 예수님께서 그의 재림(再臨)하실 날이 뜻밖에 덫과 같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항상 기도함으로써 이것을 피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도, 빛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 재림의 날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 주실 것이 분명하다.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 나타난 예를 보아도, 하나님은 노아의 심판 때나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나 혹은 메시아의 강림(降臨) 때에 있어서, 매양 그 사실을 선지자(先知者)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야 행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주의 재림에 관하여도, 말세에는 하나님의 영(靈)을 물 붓듯 부어 주시마고 약속하신대로(행 2 : 17), 빛 가운데 있는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듣고 볼 수 있도록 계시하여 주실 것이 분명하다.


제1절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를 우리는 말세(末世)라고 한다. 그런데 현세(現世)가 바로 말세라는 사실은 이미 전편의 인류역사종말론(人類歷史終末論)에서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세가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에서 보면, 예수님은 탕감복귀섭리시대(구약시대)의 2천년이 지난 후에 강림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蕩減復歸)의 원칙에서 볼 때에, 전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재탕감복귀섭리시대 (신약시대)의 2천년이 끝날 무렵에, 주(主)께서 재림하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에 관한 항목에서 상론(詳論)한 바와 같이,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함으로써, 사탄편 아담형의 인물인 카이젤이 망하고, 사탄편 재림주형(再臨主型)의 인물 스탈린이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를 이루었던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공생공영공의주의세계(共生共榮共義主義世界)를 탕감복귀하실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재림기(再臨期)가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2절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I. 성서에 대한 관점


하나님은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암시(暗示)하여, 어느 시대 어떤 환경의 사람이든지, 자유롭게 그 지능과 심령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하여, 모든 천륜(天倫)의 중요한 문제들을 상징과 비유로써 교시(敎示)해 나오셨다 (요 16 : 25). 그러므로 성서는, 각각 그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든 해석자들에게 상이(相異)한 관점을 세워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교파가 분열되는 주요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그 관점을 어디에다 두는가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례 요한에 관한 문제만 하여도 그 하나의 예가 되는 것으로서(전편 제4장 제2절 III ), 우리는 예수님 이후 2천년 간이나, 세례 요한이 그의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선입관으로써 성서(聖書)를 보아 왔기 때문에, 성서도 또한 그렇게 보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의 입장에서 성서를 다시 상고(詳考)할 때, 세례 요한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2절 III).


이와 같이 우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문자에만 붙들려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단정하는 입장에서 성서를 보아 왔기 때문에, 성서도 또한 그렇게만 보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현대인의 지성으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이제 우리는 성서의 문자가 말하고 있는 그 참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종래와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 번 성서를 상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의 세례 요한에 관한 부분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였다. 예언자 말라기는 메시아의 강림(降臨)에 앞서, 이미 승천(昇天)한 엘리야가 먼저 오리라고 예언한 바 있었다(말 4 : 5).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승천한 바로 그 엘리야가 재림(再臨)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의당 그는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이라고 믿고 그 날만을 고대하였었다. 그러나 의외에도 예수님은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난(눅 1 : 13)을 가리켜서 엘리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11 : 14).


우리는 여기에서 엘리야의 재림이, 당시 유대인들이 믿고 있었듯이, 그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써 이루어지지 않고, 지상에서 세례 요한으로 출생하는 것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바로 예수님의 증언에 의하여서 알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신도들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으로 믿어 왔으나, 일찍이 엘리야 재림의 실제가 우리에게 보여 준 대로, 재림 때에도 초림(初臨)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시리라는 것을 부정할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지상에서의 육신 탄생으로 재림하시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관점에서, 이에 관한 성경의 많은 기록을 다시 한번 상고(詳考)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初臨) 때에도, 많은 학자들은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햄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마 2 : 5∼6). 그러나 한편, 다니엘서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단 7 : 13)라고 기록된 말씀에 의하여, 메시아가 구름을 타고 강림(降臨)하실 것으로 믿은 성도들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추단(推斷)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도 유대인들 중에는,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내어난 예수는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반기독교운동(反基督敎運動)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랬기에 사도 요한은 이들을 경고하기 위하여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니(요이 1 : 7∼8)라고 하여, 육신 탄생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다니엘 7장 13절의 말씀은 예수 재림(再臨) 때에 되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마 11 : 13)라고 하신 말씀이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 : 4)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메시아의 강림으로써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전 목적을 완성하시려는 섭리를 해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한번 오셨던 메시아가 재림하시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누구도 다니엘 7장 13절의 말씀이 메시아의 재림(再臨)에 관한 예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예수님의 초림(初臨) 때에 되어질 현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성서적인 근거에서 메시아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으로 믿은 신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에 있어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셨으므로, 재림하실 때도 그와 같이 될는지 모른다는 입장에서, 우리는 성서를 다시 한번 상고(詳考)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II. 예수님의 재림은 지상 탄생으로 이루어진다


누가복음 17장 24절 내지 25절을 보면, 예수님은 장차 그가 재림하실 때에 되어질 일들을 예상하시면서, 인자도 자기의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님이 성서의 문자 그대로, 구름을 타고 천사장(天使長)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 중에 재림하신다면(마 24 : 30∼31), 아무리 죄악이 관영(貫盈)한 세대라 할지라도, 이러한 모양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받들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고난을 당하신다든가 이 세대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 같은 일은 절대로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재림하실 때에 그와 같이 불행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셨을 것인가?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선지자(先知者) 말라기가 예언한대로(말 4 : 5), 메시아에 앞서엘리야가 하늘로부터 재림하여, 메시아의 강림(降臨)에 관한 것을 가르쳐 줄 것으로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도 엘리야가 왔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이 미미한 존재로서 도둑같이 메시아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천대하였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2절 II ). 예수님은 이러한 자신을 살펴볼 때, 재림하실 때에도 또한 초림 때와 같이 하늘만을 쳐다보며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을 기독교 신도들 앞에, 지상에서 탄생하시는 몸으로 도둑같이 나타나시면(계 3 : 3), 다시 그들에게 이단자(異端者)로 몰리어 고난을 당하시게 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이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 성구(聖句)는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재림하셔야만 이루어지지, 그렇지 않고 구름을 타고 오셔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8절에는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있다. 끝날이 가까워 올수록, 잘 믿으려고 애쓰는 성도들은 점차 늘어가고 있는데, 구름을 타시고 천사(天使)의 나팔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는 주님을, 어찌하여 신앙이라는 말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도들이 불신하게 될 것인가? 이 말씀도 역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셔서는, 결코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당시의 모든 사정을 돌이켜 회상해 보면, 유대인들은 장차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하강(下降)한 후에야,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유대인의 왕(王)으로 탄생하시리라고 믿고 있었다(마 2 : 6). 그런데 아직 엘리야도 나타나지 않았던 때에 뜻밖에 나사렛에서 목수(木手)의 아들로 자라난 한 청년이 메시아로 자처하고 나섰던 것이니, 저들 유대인 가운데서 죽음을 각오하고 그를 따르려는 독실한 믿음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실정을 서럽게 생각하시면서, 장차 재림하실 때에도 모든 성도(聖徒)들은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다시 지상에 육신을 쓰고 나타나시게 되면, 그들도 필시 이 유대인들과 같이 믿음이란 말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신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상하시고, 그와 같이 탄식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구도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시지 않고는 결코 그대로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이 성구를, 끝날의 신도들이 당할 환난(患難)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복귀과정(復歸過程)에 있어서도, 환난이 능히 성도들의 신앙의 길을 막을 수 없었거든, 하물며 성도들이 신앙의 최후의 관문으로 들어가는 끝날에 있어서랴! 환난과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하늘로부터의 구원(救援)의 손길을 더욱 열망하여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 누구에게나 공통된 신앙생활의 실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다시 우리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7장 22절 내지 23절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혀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볼 수 있다. 주(主)의 이름으로 기사 이적(奇事異蹟)을 행할 정도로 잘 믿는 성도(聖徒)라면, 영광 가운데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주님을 그 얼마나 잘 믿고 모시고 따르게 될 것인가 !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그들이 주님에게 그처럼 배척을 당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셨는가? 그렇듯 잘 ale는 성도들이 예수님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면, 끝날에 구원(救援)을 받을 성도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도 역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셔 가지고는, 결코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기사와 이적을 행할 정도로 잘 믿는 성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에 앞서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믿고 있던 그들은, 세례 요한이 바로 그들이 고대하던 엘리야임을 몰랐었고(요 1 : 21), 따라서 오신 메시아까지도 모르고 배척해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으로서도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와 같이 그가 재림하실 때에도 지상에서 탄생하시게 되면,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것으로 믿고 있는 성도들은 기필코 주님을 배척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 믿던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로서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토로하신 것이었다.


누가복음 17장 20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말세관(末世觀)도,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면 그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따라서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신다는 전제 밑에서만, 이 성구들은 완전히 풀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이 성구들을 하나하나 들어 가지고 그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17 : 20) : 만일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초림(初臨) 때에도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써, 이미 그 나라가 임하였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엘리야가 공중으로 재림(再臨)할 것으로 알고 고대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되었었기 때문에, 모처럼 임한 그 나라를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재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임할 것이나,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지상으로 재림하신 주님을 불신하게 되어, 모처럼 임한 그 나라를 볼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천국(하나님의 나라)은 너희 안에 있나니라(17 : 21) :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그를 먼저 메시아로 믿고 따라 모신 사람들은 벌써 그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재림하실 때에도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시기 때문에, 그를 먼저 알고 모시는 성도들을 중심하고 보면, 천국은 먼저 그들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러한 개인이 점점 많아져서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형성하게 되면, 그 천국은 점차로 볼 수 있는 세계로서 나타나게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셔서 일시에 볼 수 있는 천국을 이루어 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17 : 22) : 만일 예수님이 천사장(天使長)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면, 누구나 다 같이 그를 볼 것이기 때문에, 그 인자(人者)의 날을 보지 못하게 될 리가 없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자의 날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가? 초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 탄생하심과 함께 인자의 날은 이미 임하였던 것이나, 불신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은 이 날을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재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 탄생하시는 날로 인자의 날은 오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예수님을 보아도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인자의 날은 이미 와 있을지라도 기실 그 날을 그날로 보지 못하게 될 것임이 사실이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17 : 23) : 이미 부활론(復活論)에서 논한 바와 같이, 말세(末世)에는 심령(心靈)이 어느 기준에 달한 성도들은 '너는 주(主)라'는 계시를 받게 되는데, 그럴 때에 그들이 이러한 계시를 받게 되는 원리를 모르면, 스스로 재림주(再臨主)로 자처하게 되어 오시는 주님 앞에 적그리스도가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미혹당할 것을 염려하여 이런 권고의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17 : 24) :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유대인의 왕(王)이 나셨다는 소식은 사탄세계의 헤롯왕에게까지 들려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마 2 : 2∼3). 재림 때에 있어서는 교통과 통신기관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재림에 관한 소식은 마치 번갯불과 같이 빠르게 동서간(東西間)에 왕래하게 될 것이다.


17장 25절에 관해서는 위에서 이미 논술(論述)한 바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17 : 26) : 노아는 홍수심판(洪水審判)이 있을 것을 알고, 백성들에게 방주(方舟)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쳤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있다가 모두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지상으로 재림(再臨)하셔서 진리의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성도들은, 땅에서 들려오는 이 말씀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도리어 그를 이단자(異端者)로 배척하다가, 노아 때와 같이 모두들 섭리의 받들지 못하는 입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17 : 33) : 구름을 타고 천사(天使)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믿는데,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상 탄생으로 재림하시기 때문에,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가 이단(異端)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그를 믿고 따르려면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각오를 하고서라도 믿고 따르면 그 결과는 살게 될 것이나, 현실적인 환경에 영합하여 그를 이단으로 배척하고, 살겠다고 뒷걸음을 치다 보면 그 결과는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17 : 37) : 예수님은 그 제자들이 그의 재림하실 장소를 묻는 말에 이같이 대답하셨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제단(祭壇)에 놓였던 쪼개지 않은 비둘기 위에 솔개가 내렸던 사실을 알고 있다(창 15 : 11). 이것은 성별(聖別)되지 않은 것이 있는 곳에는, 그것을 취하기 위하여 사탄이 따른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마지막 대답은 주검이 있는 곳에 그 주검을 취하러 사탄이 모이는 것같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은 생명이 있는 곳으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말씀은 주님은 독실한 성도들 가운데 나타나실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미 부활론(復活論)에서 논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기(再臨期)에는 많은 영인들의 협조에 의하여, 독실한 성도들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되는데, 이 곳이 바로 생명있는 곳으로서 주님이 현현(顯現)하실 곳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초림(初臨) 당시에도 하나님을 가장 잘 받들어 온 선민(選民) 가운데서 탄생하셨고, 선민 중에서도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서, 비로소 메시아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실 때에는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시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2장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여기의 철장(鐵杖)은 죄악세계를 심판하고,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인류역사종말론(人類歷史終末論)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불심판은 곧 혀 심판이요 따라서 말씀 심판이다(약 3 : 6).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시던 그 '말씀'이 저들을 심판한다고 하셨고(요 12 : 48),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불살라 심판한다고 하셨으며(벧후 3 : 7), 주께서 입의 기운으로 불법(不法)한 자들을 죽인다고도 하셨다(살후 2 : 8). 그러므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의 입의 막대기, 곧 혀와 입술의 기운, 곧 그의 말씀이 바로 철장인 것이다(사 11 : 4).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27절에는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분명히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신다고 하였고, 또 그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여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을 수 있는 분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누구시겠는가? 그는 바로 지상에서 만왕의 왕으로 탄생하시어 지상천국을 이루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서두(序頭)를 보면 예수님의 조상에 4음녀(四淫女)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만민의 구주(救主)는 죄악의 혈통을 통하여, 죄 없는 인간으로 오셔서, 죄악의 혈통을 가진 후손을 구원하실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위의 성구의 '여자'를 교회(敎會)로 해석하는 성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전제 밑에서 이 성구를 해석하려니까, 교회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자의 남은 자손'은, 그 아래 씌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서, 하나님의 양자격(養子格)으로(롬 8 : 23) 선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再臨)에 관하여, 어떤 학자들은 성령(聖靈)의 강림으로 인하여(행 8 : 16) 예수님이 각자의 마음 속에 내재(內在)하게 되는 것을(요 14 : 20) 그의 재림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직후 오순절(五旬節)에 성령이 강림하신 때부터 (행 2 : 4) 오늘에 이르기까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언제나 내재하시게 된 것이므로, 이런 것이 재림이라면 그 재림은 이미 2천년 전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어떤 교파에서는 예수님이 영체(靈體)로 재림하실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무덤에서 3일 만에 부활(復活)하신 직후에, 그의 생시(生時)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으며 (마 28 : 9), 그 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령기준(心靈基準)이 높은 신도들에게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아오셔서 모든 것을 지시하여 오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재림도 이미 2천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니,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새삼스럽게 그 재림의 날을 역사적인 소망의 날로 고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체와는 수시로 만나고 있으면서도 재림하실 날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제자들이 고대한 것은 영체로서의 재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 예수님은 영적으로 항상 만나고 있는 사도 요한에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이 말씀을 들은 요한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예수님 자신도 영체로써 찾아오시는 것은 재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셨으며, 사도 요한도 또한 예수님이 영체로써 나타나시는 것을 그의 재림으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영체로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초림시(初臨時)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재림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극히 자명한 사실이다.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무형(無形) 유형(有形) 두 세계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대로 이 세계를 주관하게 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시되 영인체(靈人體)와 육신(肉身)의 두 부분으로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이 두 세계의 주관자로 설 수 없게 되었으므로, 주관자를 잃어버린 피조물(被造物)은 탄식하며 자기를 주관해 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게 되었다(롬 8 : 19∼22). 그러므로 예수님은 완성한 아담으로서 이 두 세계의 완전한 주관자로 오셔서 (고전 15 : 27), 모든 성도들을 그에게 접붙이어(롬 11 : 17) 그와 한 몸 되게 함으로써, 그들도 모두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주관자로 서게 해 주시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자, 그들과 전인류를 하나님 앞에 복귀(復歸)하시기 위한 대속(代贖)의 조건으로, 예수님의 몸을 사탄에게 내주시어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육적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아, 후일 재림하셔서 그것을 이루시기로 약속하고 가셨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그러므로 지금까지 지상에서 영육(靈肉) 아울러 완성되어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주관함으로써, 그것들을 하나로 화동시켜 준 존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준의 완성실체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영체(靈體)로 오셔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초림 때와 같이 영육 아울러 완성한 존재로 오셔서, 온 인류를 영육 아울러 그에게 접붙이어 한 몸 되게 함으로써(롬 11 : 17), 그들로 하여금 영육 아울러 완성하여,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주관하도록 하시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하시어, 복귀된 전인류의 참부모가 되시고, 그 나라의 왕(王)이 되셔야 할 것이었다(사 9 : 6, 눅 1 : 31∼33). 그러나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므로, 장차 재림하셔서 이루실 것으로 약속하시고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셨다. 따라서 그가 재림하시어서도 초림 때와 마찬가지로 지상천국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인류의 참부모가 되시고 또 왕이 되셔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지상에서 탄생하시지 않으면 아니 된다.


또 인간의 속죄(贖罪)는 그가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전편 제1장 제6절 III 3).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육신을 쓰시고 오셔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은 영적 구원뿐이어서, 아직도 우리의 육신을 통하여 유전되어 온 원죄(原罪)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속죄하시어 인간의 육적 구원까지 완성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셔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셔서는 이 목적을 달성하실 수 없기 때문에, 초림 때와 같이 육신을 쓰고 오시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영체 재림(靈體再臨)이 아니라 초림 때와 같이 육신 재림이라는 것을 여러 모로 밝혔다. 예수님이 설혹 영체로 재림하신다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안(靈眼)으로만 볼 수 있는 영체가, 물질로 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더구나 그의 재림이 영체로써가 아니고 육신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일진대, 그 육신으로서 공중의 어디에 가 계시다가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하나님이 무슨 기적인들 행치 못하실 것인가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세우신 법도를 스스로 무시하는 입장에는 서실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와 조금도 다름없는 육신을 쓰고 재림하셔야 할 예수님이, 구태여 지구 아닌 다른 어떤 천체(天體)의 공간 속에 계시다가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도록 하시는, 그러한 비원리적인 섭리는 하실 필요도 없고 또 하실 수도 없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 온 모든 논증에 입각해 볼 때, 예수님의 재림이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시는 것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III. 구름 타고 오신다는 성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의 재림(再臨)이 지상탄생(地上誕生)으로 이루어진다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알기 위하여서는 먼저 구름은 무엇을 비유하였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스데반이 순교(殉敎)를 당할 때에, 하나님의 우편(右便)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본 사람은 영안(靈眼)이 열린 성도들뿐이었다(행 7 : 55). 따라서 영계에 계시는 예수님이 영체(靈體) 그대로 재림하신다면 그는 영안이 열린 사람들에게만 보여질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각인(各人)의 눈이 다 영체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聖經)에 각인의 눈이 다 재림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다고 한 것은, 그가 육신을 쓰고 오시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한편 육신을 쓴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의 구름은 분명코 무엇인가를 비유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또 같은 성구(聖句) 가운데, 저를 찌른 자도 볼 것이라고 한 기록이 있다. 예수님을 찌른 자는 로마 병정이었다. 그러나 로마 병정은 재림하시는 주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미 죽어 버린 로마 병정이 지상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으려면 부활(復活)해야 될 터인데, 요한계시록 20장 5절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될 사람은, 첫째 부활에 참여할 사람들뿐이요, 그 밖의 죽은 자들은 천년왕국시대(千年王國時代)가 지나간 후에야 부활할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한 '찌른 자'는 부득이 비유로 해석하여,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다가 뜻밖에 그가 지상에서 육신 탄생으로 재림하시게 될 때, 그를 몰라보고 핍박하게 될 무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찌른 자'를 비유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 같은 구절 안에 있는 '구름'이라는 어구(語句) 역시 비유로 해석해서 안 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구름은 지상에서 더러운 물이 증발되어 올라간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7장 15절을 보면 물은 타락(墮落)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름은 타락한 인간이 중생(重生)하여 그 마음이 항상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는 독실한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구름은 성서나 고전(古典)에서 군중을 표시하는 말로 씌어졌다(히 12 : 1). 뿐만 아니라 오늘날 동서양의 언어생활에 있어서도 그렇게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모세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낮(+)의 구름기둥은, 앞으로 같은 민족의 인도자로 오실 예수님(+)을 표시하였고, 밤(-)의 불기둥은 예수님의 대상존재(對象存在)로서, 불의 역사(役事)로써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성신(-)을 표시한 것이었다.


우리는 위의 설명에 의하여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뜻은 중생한 성도(聖徒)들의 무리 가운데서,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인도자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도 상고(詳考)한 바와 같이 제자들이 예수님께 재림하실 곳을 물었을 때에(눅 17 : 37), 예수님이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대답하신 말씀의 본 뜻도, 독실한 성도들이 모이는 곳으로 오시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씀과 같은 내용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구름을 이와 같이 비유로서 해석하고 보면, 예수님은 초림시(初臨時)에도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셨던 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5장 47절에 첫 사람(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3장 13절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한 말씀대로, 예수님은 사실 지상에서 탄생하셨어도, 그 뜻이나 가치로 보아서는 분명히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다니엘 7장 13절에 초림 때에도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 것으로 보여주셨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IV. 예수님은 왜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再臨)하실 것으로 예언하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적그리스도의 미혹(迷惑)을 막기 위함이었다. 만일 예수님이 지상에서 육신 탄생에 의하여 재림하실 것으로 밝혀 놓았더라면,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의한 혼란을 막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미천한 가운데서 메시아로 나타나셨던 것이었으므로, 어떠한 미천한 사람들일지라도 영적으로 어느 기준에 달하게 되면, 제각기 재림주(再臨主)로 자칭하고 나서서 세상을 현혹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모든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줄로 알고, 하늘만을 우러러보고 나왔기 때문에 이 혼란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지상에서 탄생하실 것을 바로 가르쳐 주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둘째로는, 어려운 신앙노정(信仰路程)을 걷고 있는 성도(聖徒)들을 격려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이 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속히 이룰 수 있도록 성도들을 격려하시기 위하여, 전후가 잘 맞지 않는 듯한 말씀을 하신 사례가 적지 않다. 그 실례를 들어 보면, 마태복음 10장 23절에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믿게 하시기 위하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또 요한복음 21장 18절 내지 22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장차 베드로가 순교(殉敎)당할 것을 말씀하시자, 이를 받아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고 묻는 베드로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응수하셨다. 이 말씀에 의하여 요한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지나 않을까 하고 고대한 제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또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곧 재림(再臨)하실 것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는 일념에서, 로마제국의 압정(壓政)과 유대교의 핍박 가운데서도 오히려 성신(聖神)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서(행 2 : 1∼4) 초대교회(初代敎會)를 창건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 가운데서, 하늘로부터 천사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강림하셔서, 번개같이 모든 것을 이루실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많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고무(鼓舞)하고 격려하시기 위함이었다.


제3절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이 영체(靈體)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육신을 쓴 인간으로 탄생하신다면, 그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어느 곳의 택함 받은 어떤 민족 가운데서 탄생하실 것이다. 그러면 예정된 그 곳은 어디이며, 또 택함을 입은 그 민족은 어느 민족일 것인가?


I.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인가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실 때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支派) 중에서, 맨 처음으로 구원의 인(印)을 맞을 자가 14만 4천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나,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洞里)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人子)가 오리라(마 10 : 23)고 하신 말씀이나, 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살아 있다가 인자가 그 왕권(王權)을 가지고 임하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마 16 : 28)고 하신 말씀 등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으로 알고 있는 신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근본섭리(根本攝理)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33절 내지 43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과 농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종의 비유로써, 자기를 살해하는 민족에게는 재림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민족에게 맡겼던 유업(遺業)까지도 빼앗아, 그의 재림을 위하여 열매 맺는 다른 나라와 그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하나님의 유업을, 또 농부는 이 유업을 맡은 이스라엘 선민(選民)을, 종은 선지자(先知者)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그 열매 맺는 다른 나라 백성은 재림주님을 맞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다른 어떤 나라 백성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후손에게 재림하실 것으로 말씀하셨던가?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이스라엘이란 무슨 뜻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실체헌제(實體獻祭)'를 위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기 위하여, 얍복강에서 천사(天使)와 씨름하여 승리함으로써 '승리했다'는 뜻으로 받은 이름이다(창 32 : 28). 야곱은 이와 같이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후 '실체헌제'에 성공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었었다. 그러므로, 이 기대(基臺) 위에서 그 뜻을 계승한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選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서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야곱의 혈통적(血統的)인 후손이라고 해서 그들을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 : 9)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롬 2 : 28∼29)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 9 : 6)라고 증언하였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란 사실만을 가지고서 선민이라고 자랑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한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후손들이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인(埃及人)들과 싸우면서 그 땅을 떠날 때는 이스라엘 선민이었지만, 그들이 광야(曠野)에서 하나님을 반역(反逆)할 때에는 이미 이스라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광야에서 쓸어 버리고, 모세를 따른 그 후손만을 이스라엘 선민으로 삼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손이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10지파로 된 북조(北朝) 이스라엘은 벌써 이스라엘 선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2지파로 된 남조(南朝) 유대만이 이스라엘 선민이 되어 예수님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이스라엘 선민의 자격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위에서 예거(例擧)한 것과 같은 말씀으로써 선민에 대한 의의를 밝혔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신 이후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선민은 누구일 것인가? 그는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아. 그 후손이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하여 온 기독교(基督敎) 신도들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11절에 저희(유대인)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중심이 이스라엘 민족에서 이방인(異邦人)에게로 옮겨졌음을 밝혔다(행 13 : 46). 그러므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될 이스라엘 선민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한 기독교 신도들을 이르신 것임을 알 수 있다.


II. 예수님은 동방의 나라로 재림하신다


마태복음 21장 33절 이하에 예수님이 비유하여 말씀하신 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살해한 농부의 입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면 유대인들로부터 빼앗은 하나님의 유업(遺業)을 상속받아 열매 맺을 나라는 어느 나라일 것인가? 성서는 그 나라가 동방(東方)에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요한계시록 5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안팎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일곱 인(印)으로 봉한 책이 쥐어져 있는데,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나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었으므로, 요한은 통곡을 하였다. 그때에 어린양(예수님)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여(계 5 : 7), 그 인을 하나씩 떼기 시작하였다(계 6 : 1).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예수님이 여섯째 인봉(印封)의 개봉을 마치신 것을 기록하고, 최후의 인봉을 떼기 전의 중간 삽경(揷景)으로서 제7장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7장 2절 내지 3절을 보면, 해 돋는 곳 즉 동방으로부터 천사가 올라와, 최후의 심판에서 택함을 받은 자에게 인을 쳤는데, 그 인 맞은 자의 수가 14만 4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는 그 14만 4천 무리와 함께 어린양 즉 예수님이 계시더라고 씌어 있다.


우리는 이 성구들로 미루어, 예수님은 해 돋는곳, 곧 동방나라에 탄생하시어 그 곳에서 먼저 택함 받은 14만 4천 무리의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인을 치신다는 것을(계 14 : 1)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예수님의 재림(再臨)을 위한 열매를 맺을 나라는(마 21 : 43) 동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방의 여러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바로 이 나라가 될 것인가?


III.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이제까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에 재림하시지 않고, 그들의 유업(遺業)을 상속하여 열매 맺는 나라에 재림하실 것을 우리는 알았고, 또 그 열매 맺는 나라는 동방나라 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았다. 자고로 동방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3국을 말한다. 그런데 그 중의 일본은 대대로 천조대신(天照大神)를 숭배해 온 나라로서, 더구나 전체주의국가(全體主義國家)로서 재림기(再臨期)를 당하였었고, 또 앞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 당시 한국의 기독교를 혹독히 박해한 나라였던 것이다(후편 제5장 제4절 III 3 참조). 그리고 중국은 공산화(共産化)해 온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나라는 모두 사탄편 국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한국(韓國)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는 연유를 원리(原理)에 입각하여 다각도로 논증해 보기로 하겠다. 메시아가 강림(降臨)하시는 나라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1. 이 나라는 탕감복귀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한국이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하여는, 원리적으로 보아 천주적(天宙的)인 가나안 복귀를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그러면 한민족(韓民族)이 이 기대를 세워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신다면, 한국 민족은 제3 이스라엘 선민(選民)이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舊約時代)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애급(埃及)에서 박해를 받아 나온,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제1 이스라엘 선민이었고, 제1 이스라엘 선민에게 이단자(異端者)로 몰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고 제2차로 복귀섭리를 계승해 나온 기독교 신도들이 제2 이스라엘 선민이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17장 25절 이하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노아 때와 같이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실 것으로 예언하신 것과 같이, 그는 제2 이스라엘 선민 된 온 기독교 신도들에게도 이단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에 의하여 알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마치 하나님이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을 버리셨듯이, 재림하신 예수님을 핍박하는 기독교 신도들도 버리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마 7 : 23). 그렇게 되면 재림주님을 받들고 하나님의 제3차 섭리를 완수해야 할 한국민족은 제3 이스라엘 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1 이스라엘 선민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 세계였던 애급에서 400년간을 고역(苦役)하였다. 그와 같이 제2 이스라엘 선민도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 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세계였던 로마제국에서 400년 간 박해를 받으면서 싸워 이겼다. 따라서 한국 민족도 제3 이스라엘 선민이 되어, 천주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려면, 사탄편의 어떠한 국가에게서 40수에 해당되는 연수의 고역을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본제국(日本帝國)에 속방(屬邦)되어 박해를 당한 40년 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한국 민족은 어떤 경위로써 일본제국 밑에서 40년 간의 고역을 당하게 되었던가?


1895년 황궁(皇宮)에 침입하여 왕비를 학살하는 등 잔학무도(殘虐無道)한 일을 자행하기도 했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帝國主義的)인 침략의 손길은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에 의하여 뻗쳐졌었다. 즉 1905년에 일본의 이등박문(伊藤博文)과 당시의 한국 학부대신(學部大臣)이었던 친일파 이완용(李完用) 등에 의하여서, 한국의 외교권 일체를 일본제국의 외무성(外務省)에 일임하는 조약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한국에 그 통감(統監)을 두고, 필요한 지역마다 이사관(理事官)들을 두어 일체의 내정(內政)을 간섭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으로부터 정치, 외교, 경제 등 주요 부문의 권리를 박탈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을사보호조약'이 었다.


서기 1910년, 일본이 강제로 한국을 합병(合倂)한 후로는, 한국 민족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투옥 학살하였고, 1919년 3월 1일 한국 독립운동시(獨立運動時) 에는, 전국의 도처에서 수많은 양민(良民)을 살육하였다. 더구나 1923년에 일어났던 일본 관동대진재시(關東大震災時)에는, 그들이 터무니없는 모함을 조작하여 동경(東京)에 거주하던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하기 부지기수였다.


한편 수다(數多)한 한국인들은 일본의 학정(虐政)을 견디지 못하여 기름진 고국산천을 일본인들에게 내주고, 자유를 찾아 황막한 만주벌판으로 이민(移民)하여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련을 쌓으며 조국광복(祖國光復)에 진력하였었다. 일군(日軍)은 이러한 한민족의 여러 부락을 찾아다니며, 노인에서부터 유아에 이르기까지의 전 동민(全 洞民)들을 한 건물 안에 감금하고 방화 몰살하였다. 일본은 이와 같은 학정(虐政)을 그 제국이 멸망하는 날까지 계속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3·1 독립운동(三·一 獨立運動)에서 혹은 만주벌판에서 쓰러진 민중은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거니와, 더구나 제정(帝政) 말기에는 기독교 신도들에게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하여, 이에 불응(不應)하는 수많은 신도들을 투옥 학살하였다. 이뿐 아니라 8·15해방(八·一五解放) 직전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기독교 탄압정책은 실로 극악무도(極惡無道)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천황(天皇)이 제2차 대전(第二次大戰)에서의 패전을 선언함으로써 한국 민족은 드디어 그 기반(羈絆)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 민족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 제1, 제2 이스라엘 선민이 애급(埃及)이나 로마제국에서 당한 것에 못지 않은 박해(迫害)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독립운동(獨立運動)이 주로 국내외의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일어났으므로, 박해를 당한 것이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2.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일선인 동시에 사탄의 일선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주관하라고 축복하셨으므로, 사탄이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을 앞세우고 그 축복형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를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뒤를 따라 이 세계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여 나오셨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 이르면 이 세계는 필연적으로 민주(民主)와 공산(共産)의 두 세계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은 전술(前述)한 바와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타락세계(墮落世界)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로 복귀하시려고 재림(再臨)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그가 재림하실 나라를 중심하고 공산세계(共産世界)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실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한국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일선인 동시에 사탄이 가장 미워하는 일선이 되어서, 민주와 공산의 두 세력은 여기에서 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니, 그 부딪치는 선이 바로 삼팔선(三八線)이다. 즉 한국의 삼팔선은 이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치선에 그 판가리의 조건으로 놓여지는 것이 제물(祭物)이다. 그런데 한국 민족은 천주복귀(天宙復歸)를 위하여 이 일선에 놓여진 민족적인 제물이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야 했듯이 이 민족적인 제물도 쪼개야 하므로, 이것을 삼팔선으로 쪼개어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족으로 갈라 세운 것이다. 따라서 이 삼팔선은 민주와 공산의 최일선인 동시에, 하나님과 사탄의 최일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팔선에서 일어났던 6·25동란(六·二五動亂)은 국토 분단에 기인한 단순한 동족상쟁(同族相爭)이 아니라 민주와 공산 두 세계간의 대결이었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사탄과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6·25동란에 유엔의 여러 회원 국가들이 동원되었던 것은, 이 동란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한 세계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 섭리의 뜻에 맞추어 조국광복(祖國光復)의 역사(役事)에 가담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인간 시조(始祖)가 타락될 때에, 하늘편과 사탄편이 한 점에서 서로 갈렸기 때문에, 생명과 사망, 선과 악,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도 또한 한 점에서 갈라져서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부딪쳐 내려왔었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세계의 것으로 각각 분리됨으로써,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결실되었고, 이것들이 다시 한국을 중심하고 세계적인 것으로 부딪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사상, 정치와 경제 등 모든 것이 한국에서 마찰되고 충돌되어 큰 혼란이 일어남으로써, 이것이 세계에로 파급되어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영계(靈界)에서 벌어진 이러한 현상이, 복귀섭리의 중심인 한국을 중심하고 실체적으로 벌어지게 되고, 이것이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것으로 확대해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 24 : 32)라고 말씀하신 대로, 이러한 혼란이 오는 것은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올 것을 보여주는 전조(前兆)임을 알아야 한다.


일찍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그 재림(再臨)하실 곳을 물었을 때, 예수님은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대답하셨다(눅 17 : 37). 하나님의 일선이요 또한 사탄의 일선인 한국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망이 맞부딪치게 되므로, 사망의 무리를 찾아서 독수리로 상징된 사탄이 이 땅으로 모이는 동시에, 생명의 무리를 찾는 주님도 이 땅으로 오시게 되는 것이다.


3. 이 나라는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정(心情)의 대상이 되기 위하여는, 먼저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걸어야 한다. 사탄이 인간을 주관하게 됨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대립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으로 서러워하시며, 패역무도(悖逆無道)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악세계를 헤매셨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하늘을 반역(反逆)하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을 원수 사탄에게 희생시켰으며, 나중에는 독생자(獨生子) 예수님까지 십자가(十字架)에 내주시는 설움을 당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하루같이 서러워하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사탄세계와 싸우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민족은,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서러워하시는 부모님의 심정의 대상이 되어 충효(忠孝)의 길을 가는 자식이 어떻게 그 길을 안일하게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민족은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으로 섬으로써 효자효녀(孝子孝女)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1 이스라엘도 고난의 길을 걸었고, 제2 이스라엘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 나왔으니, 제3 이스라엘 된 한민족(韓民族)도 응당 그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한민족이 걸어 나온 비참한 역사노정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선민(選民)으로서 걷지 않으면 안 될 마땅한 길이었던 것으로, 실상 그 고난의 길이 결과적으로 한민족을 얼마나 큰 행복으로 인도한 것이 되었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심정(心情)의 대상이 되는 민족은 어디까지나 선한 민족이어야 한다. 한국 민족은 단일혈통의 민족으로서 4천년의 장구(長久)한 역사를 가졌고, 고구려(高句麗) 신라시대(新羅時代) 등 막강한 국세(國勢)를 자랑하던 때에도 침공해 온 외세(外勢)를 밀어내는 데 그쳤을 뿐,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었다. 사탄의 제1근성이 침략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한민족은 하늘편인 것이 분명하다. 하늘의 작전은 언제나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서 승리를 거두어 나온다. 그러므로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선지자(先知者)들과 선인(善人)들이 희생을 당하였고, 독생자(獨生子)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결과적으로 승리는 하늘 것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제1차, 제2차의 세계대전(世界大戰)에 있어서도 공격을 한 것은 사탄편이었으나, 매양 승리는 하늘편으로 돌아갔다. 이와 같이 한민족도 역사 이래 수다(數多)한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민족이 하늘편에 서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함이었다.


한민족은 선천적(先天的)으로 종교적인 천품(天稟)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종교적인 성향은 언제나 현실을 떠난 곳에서 현실 이상의 것을 찾으려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민 족은 민도(民度)가 대단히 낮던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천사상(敬天思想)이 강하여, 부질없이 자연을 신화(神化)함으로써 거기에서 현실적인 행복을 구하는 따위의 종교는 숭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민족은 자고로 충(忠)·효(孝)·열(烈)을 숭상하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민족이 심청전(沈淸傳)이나 춘향전(春香傳)을 거족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충·효·열을 숭상하는 민족성의 힘찬 저류(底流)에서 나온 성향인 것이다.


4. 이 나라에는 예언자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한민족(韓民族)에게 내린 뚜렷한 예언자(豫言者)의 증거로서, 첫째 이 민족은 계시(啓示)에 의하여 메시아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1 이스라엘 선민이 예언자들의 증언을 따라(말 4 : 2∼5, 사 60 : 1∼22), 장차 메시아가 왕(王)으로 오셔서 왕국을 세우고 자기들을 구원해 줄 것을 믿고 있었으며, 제2 이스라엘 선민들이 메시아의 재림(再臨)을 소망으로 하고 어려운 신앙의 길을 걸어나온 것과 같이, 제3 이스라엘 선민된 한민족도 이조(李朝) 5백년 이래 이 땅에 의(義)의 왕이 나타나서 천년왕국(千年王國)을 건설하고 세계만방(世界萬邦)의 조공(朝貢)을 받게 된다고 하는 예언을 믿는 가운데서 그때를 바라보며 고난의 역사노정을 걸어온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정감록(鄭鑑錄)' 신앙에 의한 한민족의 메시아사상이다.


한국에서 새로운 왕이 나온다는 예언이기 때문에, 집권자들은 이 사상을 막아 왔고, 더구나 일제시대의 집권자들은 이 사상을 말살하기 위하여 서적을 소각(燒却)하는 등의 탄압을 가해 왔으며, 또 기독교가 들어온 후 이 사상은 미신(迷信)으로 몰려 왔었다, 그러나 한민족의 심령 속에 깊이 박힌 이 메시아사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면(連綿)하게 흘러 내려온 것이다. 이제 알고 보니 한민족이 고대해 온 의의 왕 정도령(正道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라는 뜻)은, 바로 한국으로 재림(再臨)하실 예수님에 대한 한국식 이름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 한국 안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장차 메시아가 한국으로 재림하실 것을 정감록(鄭鑑錄)으로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 책의 많은 예언이 성서의 예언과 일치된다는 사실을 수다한 학자들이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이 민족이 믿고 있는 각 종교의 도주(道主)들이 모두 한국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계시를 그 신도들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전편 제3장에서 상술(詳述)한 바이지만, 문화권 발전사로 보아도 모든 종교는, 하나의 기독교(基督敎)로 통일되어 가는 것이 사실이므로, 끝날의 기독교는 지금까지의 수많은 종교의 목적을 완성해 주는 최종적인 종교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중심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그 모든 종교의 교조(敎祖)들이 지상에서 이루려 하였던 도(道)의 목적을 일괄하여 완성하시게 되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사명으로 보아 그 모든 교조들의 재림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전편 제5장 제2절 IV), 따라서 여러 종교에 있어서 계시에 의하여 한국에 재림할 것으로 믿겨지고 있는 그들의 교조는, 각각 다른 분들이 아니라 사실은 장차 오실 재림주님 한 분일 뿐일 것이다. 즉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불교에서는 미륵불(彌勒佛)이, 유교에서는 진인(眞人)이, 천도교에서는 최수운(崔水雲)이, 그리고 정감록에서는 정도령(正道令)이 현현하는 것으로 교단마다 각이(各異)한 계시를 받아 왔던 것이다.


셋째는, 예수님의 한국 재림에 관한 영통인(靈通人)들의 신령역사(神靈役事)가 우후(雨後)의 죽순과 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말세에는 하나님의 영(靈)을 물 붓듯 하시마고 약속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그대로 오늘의 한민족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수도자(修道者)들이 잡영계(雜靈界)로부터 낙원급(樂園級) 영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층의 영인(靈人)들과 접촉하는 가운데서, 각기 주님의 한국 재림에 관한 명확한 계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잠들고 있는 것은 현 기독교계의 지도층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 당시에, 점성술자(占星術者)들과 목자(牧者)들은 계시에 의하여 메시아 강림에 관한 소식을 알고 있었던 반면에, 누구보다도 먼저 이것을 알았어야 할 제사장(祭司長)들과 교법사(敎法師)들은,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이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 : 25)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시 유대교계의 지도층의 영적인 무지를 개탄하시는 동시에, 무식하나마 어린이들같이 순진한 신도들에게, 하늘의 일을 교시(敎示)하여 은혜를 내려주신 것을 감사하는 말씀이었다. 그 때와 동시성(同時性)의 시대인 오늘의 한국 교계에 있어서도, 그와 똑같은 사실들이 더 고차적인 것으로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은 어린이 같이 순진한 평신도층을 통하여, 끝날에 관한 하늘의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계시로써 알려 주시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내용을 발표하면 교직자(敎職者)들에게 이단(異端)으로 몰려 추방을 당하게 되므로 그에 관하여는 일체 발표하지 않고 비밀에 부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계의 실정이다.


마치 제사장(祭司長)과 교법사(敎法師)들이 그러했듯이 오늘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성서(聖書)의 문자를 풀이하는 지식을 자랑하고, 많은 신도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것으로 낙(樂)을 삼으며 그 직권행사에 만족하고 있을 뿐, 끝날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전혀 모르고 있으니 실로 이보다 더 통탄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5. 이 나라에서 모든 문명이 결실되어야 한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전편 제3장 제5절 I ), 인간의 양면(兩面)의 무지(無知)를 타개하기 위하여 나온 종교와 과학 또는 정신문명(精神文明)과 물질문명(物質文明)이 하나의 과제로서 해명되어야만, 인생의 근본문제가 모조리 풀려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루셔야 할 세계는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된 세계이어야 하기 때문에,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종적인 역사노정에서 발달해 온 모든 문명도, 재림하시는 주님을 중심한 사회에서 횡적으로 일시에 모두 복귀되어 최고도의 문명사회를 이루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유사이래(有史以來) 전세계에 널려서 발달해 온 종교와 과학, 따라서 정신과 물질 양면의 문명이, 한국을 중심하고 모두 하나의 진리 밑에 흡수되고 융합되어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세계(理想世界)의 것으로 결실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로, 육지에서 발달한 모든 문명도 한국에서 결실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애급(埃及)에서 발상한 고대(古代)의 대륙문명(大陸文明)은 희랍(希臘), 로마, 이베리아 등의 반도문명(半島文明)으로 옮겨졌고, 이 반도문명은 다시 영국의 도서문명(島嶼文明)으로 옳겨졌으며, 이 도서문명은 다시 미국의 대륙문명을 거치어 일본의 도서문명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이 문명의 순례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한국에서 반도문명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둘째로, 하천과 해안을 중심한 문명도 한국이 있는 태평양문명(太平洋文明)으로 결실해야 된다. 나일강,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을 중심하고 발달한 하천문명은 희랍(希臘), 로마,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지중해(地中海)를 중심한 문명으로 옮겨졌고, 이 지중해문명(地中海文明)은 다시 영국, 미국을 중심한 대서양문명(大西洋文明)으로 옮겨졌고, 이 문명은 또 미국, 일본, 한국을 잇는 태평양문명으로 결실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기후(氣候)를 중심한 문명도 한국에서 결실되어야 한다. 기후를 중심하고 보면 모든 생물의 활동과 번식은 봄에서부터 시작되어, 여름에는 무성하고 가을에는 결실하여 겨울에는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변전(變轉)은 해(년)를 두고만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보더라도 아침은 봄, 낮은 여름, 저녁은 가을, 밤은 겨울에 각각 해당되는 것이며, 인생 일대의 유(幼)·청(靑)·장(壯)·노(老)도 그렇다 하겠으며, 또 역사의 전기간도 이렇게 짜여 있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이 이러한 절후적(節侯的)인 조화의 원칙으로써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한 시대는 봄 절기와 같은 때였다. 따라서 인류의 문명은 에덴의 온대문명(溫帶文明)으로 시작되어 여름 절기와 같은 열대문명(熱帶文明)으로 옮겨지고, 다음으로는 가을 절기와 같은 양대문명(凉帶文明)으로 옮겼다가, 마지막으로 겨울 절기와 같은 한대문명(寒帶文明)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야만인으로 떨어지면서, 온대문명을 이루지 못하고 바로 열대에서 원시인(原始人)의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애급대륙(埃及大陸)을 중심한 열대문명을 먼저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문명은 대륙에서 반도(半島)와 도서(島嶼)로 옮겨져서 양대문명을 이루었고, 이것이 다시 소련으로 넘어가 한대문명까지 이루게 되었다. 이제는 새 에덴의 온대문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니, 이것은 응당 모든 문명이 결실되어야 할 한국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제4절 동시성으로 본 예수님 당시와 오늘


예수님의 초림시(初臨時)와 그의 재림시(再臨時)는 섭리적인 동시성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基督敎)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정은, 예수님 때에 유대교를 중심하고 벌어졌던 모든 사정들과 흡사하다.


이러한 실례를 들어 보면, 첫째로 오늘의 기독교는 유대교와 같이 교권(敎勸)과 교회의식(敎會儀式)에 붙들려 있는 한편 내용이 부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祭司長)과 교법사(敎法師)들을 중심으로 한 지도층은 형식적인 율법주의(律法主義)의 노예가 되어 그 심령생활(心靈生活)이 부패하였으므로, 양심적인 신도들일수록 심령의 갈급을 채우기 위하여 이단자(異端者)로 몰리던 예수님을 벌떼같이 따라다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의 기독교에 있어서도 교직자(敎職者)를 비롯한 지도자층이 그 교권과 교회의식의 노예가 되어 심령적으로는 날로 암매(暗昧)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독실한 기독교 신도들은 이러한 환경을 벗어나 신앙의 내적 광명을 체휼(體恤)하려고, 참된 길과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 산과 들로 헤매고 있는 실태인 것이다.


다음으로 오늘의 기독교인들도 예수님 초림(初臨) 때의 유대교인들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시면 그들이 먼저 주를 핍박하게 되리라는 것은 위에서 이미 상론(詳論)한 바와 같다. 예수님은 예언자(豫言者)들에 의한 구약성경(舊約聖經)의 말씀을 이루시고, 그 터전 위에서 새 시대를 세우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는 구약말씀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시지 않고, 새 시대를 위한 새 말씀을 주셔야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제사장(祭司長)과 교법사(敎法師)들은 예수님의 언행(言行)을 모두 구약성경의 문자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비판하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차질로 인하여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는 결과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목적도, 기독교 신도들이 닦아 놓은 신약시대(新約時代)의 영적 구원섭리의 터전 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시려는 데 있는 것이기 때문에(계 21 : 1∼4), 장차 그가 재림하시면 이미 2천년 전 옛날에 주고 가셨던 신약의 말씀을 되풀이하시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새 말씀을 주실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성서의 문자에 붙들려 있는 오늘의 기독교 신도들은, 초림 때와 같이 재림주님의 언행을 신약성경의 문자가 보여주는 범위 안에서 비판하게 될 것이니, 결국 그를 이단자(異端者)로 몰아 핍박할 것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예수님이 그가 재림하실 때에, 먼저 많은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눅 17 : 25).


한편 또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계시나, 재림하셔서 주실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초림 때와 똑같은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초림때에 있어 하나님은 메시아가 오셨다는 소식을 제사장(祭司長)이나 교법사(敎法師)들에게는 주시지 않고, 이방의 점성술자(占星術者)와 순진한 목자(牧者)들에게 주셨던 것이니, 마치 친 자식이 무지하기 때문에 의붓자식에게 통정(通情)한 것과 같은 격이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소식도 진부한 신앙태도를 묵수(墨守)하고 있는 오늘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보다는, 도리어 평신도(平信徒)들이나 그들이 이방인(異邦人)으로 취급하는 이교도(異敎徒) 혹은 양심적으로 사는 불신자들에게 먼저 계시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초림 때에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이, 선민(選民)인 유대교의 지도층이 아니고 그 하민(下民)이나 이방인들이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의 재림시에도 선민 된 기독교의 지도층들보다, 평신도나 비기독교인(非基督敎人)들이 먼저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예비한 잔치에 참석할 자는 미리 청함받은 손님들이 아니고, 행길에서 만나는 대로 불러들여진 사람들일 것이라고 개탄하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마 22 : 8∼10).


다음으로는 재림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천국을 바라고 나선 길로 해서 지옥으로 가게 될 신도들이 많을 것이다. 제사장과 교법사들은 하나님의 선민을 지도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가 오신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 가지고, 솔선하여 그 선민을 메시아 앞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 사명을 다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먼저 성전을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갈릴리 바닷가를 헤매시어 어부(漁夫)로써 제자를 삼으셨고, 또한 주로 죄인과 세리(稅吏)와 창녀(娼女) 등 미천한 사람들을 대하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제사장과 교법사들은 예수님을 살해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역적을 처단한 줄로만 알고, 여생을 성직(聖職)에 충성하여 경문(經文)을 외우고 십일조(拾壹條)를 바치며 제사를 드려 곧장 천국에의 길로 달렸다. 그러나 결국 육신을 벗고서 다다른 곳은 뜻밖에도 지옥이었던 것이다. 불행히도 그들은 천국을 바라고 나선 길을 통하여 지옥으로 빗나가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끝날에도 그대로 일어날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누구나 다시 한번 자기 스스로를 심각히 되살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신도들은 저마다 천국에의 길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잘못하면 그 길이 바로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일찍이 끝날에 있어 주의 이름으로 사귀(邪鬼)를 쫓고 모든 기사(奇事)를 행할 정도로 잘 믿던 성도들을 대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 : 23)고 책망케 될 것으로 말씀하셨다.


알고 보면 오늘날과 같은 역사의 전환기(轉換期)에 살고 있는 성도들처럼 위험한 입장에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만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같이 그 신앙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은 모두 수포(水泡)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은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 12 : 10)고 하였던 것이다.


제5절 언어 혼잡의 원인과 그 통일의 필연성


인간이 타락되지 않고 완성되어, 하나님을 머리로 하고 모두 지체가 되어 한 몸과 같은 대가족(大家族)의 세계를 이루었더라면, 이 땅 위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생겨났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언어가 달라서 서로 통할 수 없게 된 것은, 결국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종적(縱的)인 관계가 끊어지면서 인간들 상호간의 횡적(橫的)인 관계도 끊어지게 됨으로써, 오랫동안 서로 떨어진 지리적 환경 가운데서 서로 갈리어 다른 민족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당초에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던 노아의 후손들이, 갑자기 서로 말이 통할 수 없게 되어 혼잡을 일으켰던 성서의 기록이 있는데, 그 경위(經緯)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후손인 가나안족들이, 사탄의 뜻을 높이려고 바벨탑을 높이 쌓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하늘편에 있었던 셈과 야벳의 족속들이 이 공사를 협조하였기 때문에, 저들이 서로 의사를 상통(相通)하지 못함으로써 사탄의 일을 돕지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던 것이다(창 11 : 7).


한 부모의 같은 자손으로서, 똑같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름으로 인하여 서로 그것을 통할 수 없게 된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再臨)하시는 주님을 부모로 모시는 하나의 대가족의 이상세계(理想世界)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언어가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의 뜻을 높이려던 바벨탑으로 인하여 언어가 혼잡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탕감복귀원칙(湯減復歸原則)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높이는 하늘탑을 중심하고, 모든 민족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면 그 언어는 어느 나라 말로 통일될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배우는 법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부모되신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한국말을 쓰실 것이므로 한국어(韓國語)는 바로 조국어(祖國語)가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민족은 이 조국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온 인류는 한 나라 말을 사용하는 한 민족이 되어 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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