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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인류역사 종말론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8-10-20 12:40     조회 : 3448     트랙백 주소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역사(人類歷史)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또 이것이 어디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를 모르고 살아왔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終末)에 관한 문제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基督敎) 신도들은 다만 성서(聖書)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末世)에는 하늘과 땅이 모두 불에 타서 소멸(消滅)되고(벧후 3 : 12),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마 24 : 29), 천사장(天使長)의 나팔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름 속으로 끌어올리워 공중(空中)에서 예수님을 상봉(相逢)하리라고(살전 4 : 16∼17)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 성서의 문자 그대로 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성서의 중요한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말씀도 무엇을 비유(比喩)하여 말씀하신 것인지, 이 문제를 해명하는 것은 기독교 신도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는, 먼저 하나님이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창조(創造)하신 목적과, 타락(墮落)의 의의, 그리고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 등 근본문제(根本問題)를 풀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제1절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완성과 인간의 타락


I.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완성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이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되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그의 창조본연의 존재가치(存在價値)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인간 이외의 피조물(被造物)은 자연 그대로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도록 창조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원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자유의지(自由意志)와 그에 의한 행동을 통하여서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 드리는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스스로 노력하여서 그 뜻대로 생활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체휼하여 그 뜻을 알아 가지고 그 뜻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인간이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개성완성(個性完成)이라고 한다.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타락 전의 아담 해와나 선지자(先知者)들이 하나님과 일문일답(一問一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인간에게 이와 같이 창조되었던 소성(素性)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을 완성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이는 몸과 마음과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몸은 마음이 거하는 하나의 전(殿)으로서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한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므로, 결국 그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만 생활하게 된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는 것과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20절에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개성(個性)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이룸으로써, 성령(聖靈)이 그 안에 살게 되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인간은 신성(神性)을 갖게 되므로 죄를 지으려야 지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타락할 수도 없게 된다.


개성을 완성한 사람은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룬 선(善)의 완성체인데, 선의 완성체가 타락된다면 선 그 자체가 파멸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불합리(不合理)한 결과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완성된 입장에서 타락되었다면 하나님의 전능성마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영원(永遠)한 주체로 계시는 절대자(絶對者)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도 영원성과 절대성을 가져야 하므로,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하여 죄를 지을 수 없게 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축복하신 말씀대로(창 1 : 28) 선의 자녀를 번식하여 죄 없는 가정과 사회를 이루었더라면, 이것이 바로 한 부모를 중심한 대가족(大家族)으로 이루어지는 천국(天國)이었을 것이다.


천국은 마치 개성을 완성한 사람 하나 모양과 같은 세계여서, 인간에 있어 그 두뇌의 종적(縱的)인 명령에 의하여 그의 사지백체(四肢百體)가 서로 횡적(橫的)인 관계를 가지고 활동하듯이, 그 사회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종적인 명령에 의하여 서로 횡적인 유대(紐帶)를 맺어 생활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 있어서는, 어느 한 사람이라도 고통을 당하면 그것을 보시고 같이 서러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사회 전체가 그대로 체휼하게 되기 때문에 이웃을 해치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죄 없는 인간들이 생활하는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이 원시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개한 생활을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고 또 인간이 원하는 천국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신 말씀대로(창 1 : 28), 개성을 완성한 인간들은 과학을 발달시켜 자연계(自然界)를 정복함으로써 극도로 안락한 사회환경을 이 지상에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창조이상(創造理想)이 실현된 곳이 바로 지상천국(地上天國)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완성되어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다가 육신을 벗고 영계(靈界)로 가게 되면 바로 거기에 천상천국(天上天國)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은 어디까지나 먼저 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II. 인간의 타락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인간은 아직도 성장기간(成長期間)에 있어서, 미완성(未完成)한 입장에 있었을 때에 타락되었다. 인간에게는 왜 성장기간이 필요하였으며, 인간시조가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도 이미 창조원리에서 밝혔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이루지 못하고, 사탄이 우거(寓居)하는 전(殿)이 되어 그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신성(神性)을 갖지 못하고 악성(惡性)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악성을 가진 인간이 악의 자녀를 번식하여 악의 가정과 사회와 문제를 이루었으니, 이것이 바로 타락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지상지옥(地上地獄)이다. 지옥인간들은 하나님과의 종적인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횡적인 유대를 이룰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서 체휼할 수 없게 되어, 마침내는 이웃을 해치는 행위를 자행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지상지옥(地上地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육신을 벗은 후에는 천상지옥(天上地獄)으로 가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 주권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사탄 주권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사탄을 세상 임금(요 12 : 31), 또는 세상의 신(고후 4 : 4)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제2절 구원섭리


I. 구원섭리는 곧 복귀섭리다


이 죄악(罪惡)의 세계는 인간이 서러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도 서러워하시는 세계인 것이다(창 6 : 6).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설움의 세계를 그대로 방임하실 것인가? 기쁨을 누리시려고 창조하셨던 선(善)의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설움이 가득한 죄악의 세계로 영속할 수밖에 없이 되었다면, 하나님은 창조에 실패한 무능한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필코 이 죄악의 세계를 구원(救援)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세계를 어느 정도로 구원하셔야 할 것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어야 하므로,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이 죄악의 세계에서 사탄의 악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행 26 : 18), 먼저 인간 시조(始祖)가 타락하기 전의 입장을 복귀(復歸)하는 데까지 구원하시고, 그 위에 선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시어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데까지(행 3 : 21) 나아가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병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들기 전의 상태로 복귀시킨다는 뜻이요,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빠지기 전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죄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죄가 없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곧 복귀섭리(復歸攝理)인 것이다(행 1 : 6, 마 17 : 11).


타락(墮落)은 물론 인간 자신의 과오로 말미암아 되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이란 결과도 있을 수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결과에 대하여 창조주(創造主)로서의 책임을 지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잘못된 결과를 창조본연의 것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존(永存)하시는 주체이시므로, 그의 영원한 기쁨의 대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도 역시 영원성을 갖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인간에게는 이와 같이 영원성을 두고 창조하셨던 창조원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타락된 인간이라고 해서 이를 아주 없애버리어 창조원리(創造原理)를 무위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인간을 구원하시어 그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하시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3대 축복(三大祝福)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므로(창 1 : 2), 이사야 46장 11절에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사탄 때문에 잃어버렸던 이 축복들을 복귀하는 섭리를 하심으로써 그는 약속의 뜻을 이루어 나오셨던 것이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도 곧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본연의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신성(神性)을 갖게 됨으로써,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중심하고 보면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II. 복귀섭리의 목적


그러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선의 대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에 창조하시고, 그들을 중심하고 먼저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인간 시조(始祖)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도 역시 지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나(마6 : 10),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마 4 : 17) 등은 모두 복귀섭리의 목적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데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III.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역사다


우리는 위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바로 복귀섭리(復歸攝理)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인류역사(人類歷史)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선(善)의 세계를 복귀케 하시려는 섭리역사(攝理歷史)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文化圈發展史)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本心)만은 공통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지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대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상충되어 투쟁의 역사를 엮어 내려온 것이 사실이지만, 선을 찾아 세우려는 그들의 근본목적만은 모두 동일하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의 본심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선을 지향하고 있는가? 그것은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선의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비록 타락인간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선의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으나 선을 추구하는 그 본심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들로써 엮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갈 곳은 결국 선(善)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심(本心)이 아무리 선을 지향하여 노력한다고 하여도, 이미 악주권하(惡主權下)에 놓여진 이 세계에서는 그 선의 실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서 그 선의 주체를 찾으려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니, 이러한 필연적인 요구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종교(宗敎)인 것이다. 이와 같이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모르게 된 인간은 종교를 세워 부단히 선을 찾아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설혹 종교를 받들고 있었던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망하였다 할지라도 종교 그 자체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남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국가흥망사(國家興亡史)를 중심하고 더듬어 보기로 하자.


먼저 중국(中國)의 역사를 보면 춘추전국(春秋戰國)의 각 시대를 거치어 진(秦) 통일시대가 왔고, 전한(前漢), 신(新), 후한(後漢), 삼국(三國), 서진(西晋), 동진(東晋), 남북조(南北朝)의 각 시대를 거치어 수(隋) 당(唐) 통일시대가 왔으며, 오대(五代), 북송(北宋), 남송(南宋), 원(元), 명(明), 청(淸)의 시대를 거치어 오늘의 중화민국(中華民國)에 이르기까지 복잡다양한 국가의 흥망과 정권의 교체를 거듭하여 내려왔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儒), 불(佛), 선(仙)의 극동종교(極東宗敎)만은 엄연히 그대로 남아져 있다.


다음으로 인도(印度)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마우리아, 안드라, 굽타, 바루다나, 사만, 가즈니, 무갈제국을 거쳐서 오늘의 인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변천은 거듭되어 내려왔으나 힌두교만은 쇠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또 중동지역(中東地域)의 역사를 보면 사라센제국, 동·서 칼리프, 셀주크 터어키, 오스만 터어키 등 나라의 주권은 여러 차례 바뀌어 내려왔으나, 그들이 신봉하는 이슬람교만은 연면하게 그 명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


나아가 유럽사의 주류에서 그 실증을 찾아보기로 하자. 유럽의 주도권은 그리이스, 로마, 프랑크,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일시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지나 영국으로 옮겨졌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基督敎)만은 그대로 융흥(隆興)해 왔으며, 유물사관(唯物史觀) 위에 세워진 전제정치하(專制政治下)의 소련에서마저 기독교는 아직도 멸할 수 없는 것으로서 남아져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모든 국가 흥망의 발자취를 깊이 더듬어 보면, 종교를 박해하는 나라는 망하였고, 종교를 보호하고 육성시킨 나라는 흥하였으며, 그 나라의 주권은 보다 더 종교를 숭앙(崇仰)하는 나라에로 넘겨져 간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종교를 박해하고 있는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가 괴멸될 날이 기필코 오리라는 것은 종교사(宗敎史)가 실증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에는 많은 종교가 오고갔다. 그 가운데서 영향력이 큰 종교는 반드시 문화권(文化圈)을 형성하여 왔는데, 문헌에 나타나 있는 문화권만 해도 21내지 26개나 된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열등한 것은 보다 우수한 것에 흡수되었거나 또는 융화되어 왔다. 그리하여 근세에 이르러서는 위에서 열거한 대로 수다한 국가 흥망의 굽이침 속에서 결국 극동문화권(極東文化圈), 인도교문화권(印度敎文化圈), 회회교문화권(回回敎文化圈), 기독교문화권(基督敎文化圈) 등의 4대 문화권이 남아지게 되었고, 이것들은 다시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선을 지향해 온 모든 종교의 목적을 함께 달성해야 할 최종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인 귀추로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권의 발전사가, 수많은 종교의 소장(消長) 또는 융합(融合)에 따라 결국 하나의 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바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에로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동향으로 보아도, 우리는 인류역사가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타락인간의 양면의 무지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와 과학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함은 이미 총서(總序)에서 논술하였다. 이와 같이 역사이래 서로 관련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달해 온 종교와 과학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각각 제 갈 곳을 다 가서 한 자리에서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이제까지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나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타락(墮落)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지능이 영적인 면에서 최고도에까지 향상하였었을 것이기 때문에, 육적인 면에서도 최고도로 발달되어 과학은 그 때 극히 단시일 내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과학사회(科學社會)는 벌써 인간시조 당시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무지에 빠지게 되면서, 그러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과학으로써 그 무지를 타개하면서 창조본연의 이상적 과학사회를 복귀하여 나왔다. 그런데 오늘의 과학사회는 극도로 발달되어, 외적으로는 이상사회(理想社會)에로 전환될 수 있는 그 전 단계에까지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투쟁역사(鬪爭歷史)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물을 빼앗고 땅을 빼앗으며 사람을 빼앗으려는 싸움은 인류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벌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이 싸움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중심한 싸움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와, 오늘에 이르려는 민주(民主)와 공산(共産) 두 세계가 마지막 싸움을 겨루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제 인류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천륜(天倫)은 드디어 재물이나 땅이나 사람을 빼앗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역사의 단계를 지나서,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이름을 띠고 이 땅에 찾아왔다. 1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패전국가(敗戰國家)가 식민지를 내놓더니,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전승국가(戰勝國家)들이 차례로 식민지를 내놓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오늘의 강대국들은, 그들의 일개 도시만도 못한 약소국가들을 유엔에 가입시키고, 그들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주어, 모두 형제국가들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이 마지막 싸움이란 어떠한 싸움일 것인가? 그것은 이념(理念)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을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는 진리가 나오지 않는 한,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올 때, 비로소 종교를 부인하고 과학편중의 발달을 꾀해 나온 공산주의 사상은 전복되고, 두 세계의 하나의 이념 아래 완전히 통일될 것이다. 이와 같이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성서(聖書)를 중심하고 좀더 이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류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창 2 : 9)를 중심한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전편 제 2장 제 1절 I). 그런데 에덴동산은 아담과 해와가 창조된 어떤 국한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의미한다. 만일 에덴동산이 인간 시조(始祖)가 창조되었던 그 어느 한정된 지역만을 말한다면, 땅에 충만하도록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창 1 : 28)에 의하여 번식될 그 숱한 인류가 어떻게 그 좁은 곳에서 다 살 수 있을 것인가?


인간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중심하고 세우려던 에덴동산은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었다(창 3 : 24). 그래서 알파로 시작된 인류 죄악역사(罪惡歷史)가 오메가로 끝날 때의 타락인간(墮落人間)의 소망은, 죄악으로 물든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복귀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 잃어버렸던 그 '생명나무'를 다시 찾아 나아가는 데 있다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이 성서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타락론(墮落論)에 밝혀진 바이지만, '생명나무'는 완성한 아담 곧 인류의 참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타락되어 그의 후손도 원죄(原罪)를 가진 자녀들이 되었으니, 이 죄악의 자녀들이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두 거듭나지(重生) 않으면 아니 된다(중생론 참조). 그러므로 역사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실 참 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니, 역사의 종말기(終末期)에 들어 성도(聖徒)들이 소망하고 찾아 나아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의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도, 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로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내지 7절에도, 역사의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탄의 주관하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복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9절 내지 22절에는 사탄 주관하에서 탄식하고 있는 만물(萬物)도 말세에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함으로써 새롭게 되기 위하여(계 21 : 5)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복귀되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여러 면으로 고찰하여 볼 때,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에로 복귀하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제3절 말 세


I. 말세의 의의


하나님이 인간 조상(祖上)에게 허락하셨던 3대 축복(三大祝福)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하고 이루어지지 않고, 사탄을 중심하고 비원리적(非原理的)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런데 악으로 시작된 인류역사는 실상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이기 때문에, 사탄주권의 죄악세계(罪惡世界)는 메시아의 강림(降臨)을 전환점으로 하여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 축복(三大祝福)을 이룬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탄주권의 죄악세계가 하나님주권의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에로 교체되는 시대를 말세(末世)라고 한다. 따라서 말세는 지상지옥이 지상천국으로 바뀌어지는 때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지금까지 기독교 신도들이 믿어 온 대로의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는 공포의 때가 아니고, 창세 이후 유구한 역사노정을 통하여 인류가 유일한 소망으로 바라고 나왔던 기쁨의 한 날이 실현되는 때인 것이다.


상세한 것은 후편 제1장으로 미루거니와,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이래, 죄악세계를 청산하고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선의 세계를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여러 차례 하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곤 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세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 노아 때도 말세였다


창세기 6장 13절의 기록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였기 때문에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찌하여 노아 때가 말세였던가?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시작된 사탄을 중심한 타락세계를 1600년의 죄악사(罪惡史)를 일기로 하여 홍수심판(洪水審判)으로 멸하시고, 하나님을 신봉(信奉)하는 노아가정을 세우심으로써 그 믿음의 터 위에 하나님 주권의 이상세계를 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노아 때가 말세였던 것이다(후편 제1장 제2절 참조).


그러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그들이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창 9 : 22).


2. 예수 때도 말세였다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어서 변할 수 없기 때문에(전편 제 6장),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다시 다른 선지자(先知者)들을 부르시어 믿음의 터를 닦으시고, 그 터 위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써 사탄을 중심한 죄악의 세계를 멸하시고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세계(理想世界)를 복귀하려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 때도 말세(末世)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스스로 심판주(審判主)로 오셨다고 말씀하셨고(요 5 : 22), 그 때도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말 4 : 1)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를 복귀하려고 오셨던 것이었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불신함으로써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도 이루어지지 않고 재림(再臨) 때에로 다시 연장되었다.


3. 예수의 재림 때도 말세다


유대민족의 불신을 당하게 된 예수님은 십자가(十字架)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영적인 구원만을 이루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신 후에야 영육(靈肉) 아울러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을 완수하여(전편 제 4장 제 1절 IV) 지상천국을 복귀하시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 때도 또한 말세인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재림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 : 26)고 말씀하셨고, 그가 재림하실 때도 말세가 되어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날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 (마 24 : 29).


II. 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이미 위에서 논한 바대로, 많은 기독교 신도들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末世)에는 천변지이가 일어나며, 인간사회에도 현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이(變異)가 생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해 가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세의 징조는 실제에 있어서 그 문자대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세에 관한 성서의 모든 기록은 각각 무엇을 상징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1. 하늘과 땅을 멸하고(벧후 3 : 12, 창 6 : 13)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계 21 : 1, 벧후 3 : 13, 사 66 : 22)


창세기 6장 13절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가 되어 땅을 멸한다고 하셨지만, 사실상 멸하지는 않으셨다. 전도서 1장 4절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신 말씀이나, 시편 78편 69절에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라고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땅은 영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그의 대상도 영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대상으로 창조된 땅도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파멸되어 없어질 세계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셨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인가? 한 국가를 멸한다는 것은 그의 주권(主權)을 멸한다는 것을 의미함이요, 또 새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계 21 : 1) 새 주권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을 멸한다는 것은 그를 주관하시고 있는 사탄주권을 멸한다는 뜻이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 주권하의 새로운 천지(天地)를 복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2. 하늘과 땅을 불로써 심판하심(벧후 3 : 12)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말세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말라기 4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때도 그가 심판주(審判主)로 오셔서(요 5 : 22, 요 9 : 39) 불로써 심판하신다고 예언되어 있고, 또 누가복음 12장 49절에는 예수님이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는 말씀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예수님이 불로써 심판하신 아무 흔적도 우리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야고보서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요라고 한 말씀에 의하여 불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혀의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니, 불심판은 곧 '말씀'심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말씀심판에 관한 성구(聖句)의 예를 찾아보자. 요한복음 12장 48절에는 예수님을 저버리고 그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였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에는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 즉 말씀으로 그를 죽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 4절에는 그 입의 막대기(혀)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말씀)으로 악인(惡人)을 죽이리라고도 말씀하였으며,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와 같이 불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요한복음 1장 3절에 인간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은 인간 시조가 말씀의 실체(實體)로서 말씀의 목적을 완수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타락되어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다시 말씀에 의하여 타락인간을 재창조(再創造)하심으로써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 하셨으니, 이것이 곧 진리(성서)에 의한 복귀섭리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이와 같이 예수님은 또 말씀 완성자로 재림하셔서, 스스로 말씀심판의 기준이 됨으로써 모든 인류가 어느 정도 말씀의 목적을 이루었는가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복귀섭리의 목적이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는데 있으므로, 그 목적을 위한 심판도 말씀으로 그의 기준을 세워 행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씌어 있는 바,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의 실체로 오셔서(요 1 : 14) 생명의 말씀을 이미 선포하셨으나, 유대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시고 한탄하여 하신 말씀이다.


3.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남(마 27 : 52, 살전 4 : 16)


마태복음 27장 5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썩어 버린 그들의 육신이 다시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전편 제5장 제2절 III). 만일 영계(靈界)에 머물러 있던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이 성서의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살아 나와 성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반드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때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을지라도, 그들의 증언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었을 것인가? 그리고 그렇듯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육신(肉身)을 쓰고 무덤에서 다시 일어났다면, 그 후의 그들의 행적(行蹟)에 관한 기사가 반드시 성서에 남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들에 관한 아무런 기사도 달리 씌어 있지 않다.


그러면 무덤에서 살아 나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마치 모세와 에리야의 영인체(靈人體)가 변화산상(變化山上)에서 예수님 앞에 나타났었던 것처럼(마 17 : 3),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재림부활(再臨復活)을 위하여, 지상에 재림한 것을 영적으로 보고(전편 제5장 제2절 III) 기록한 말씀이다.


그러면 무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낙원(樂園)에서 보면,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이 머물러 있던 영형체급 영인(靈形體級靈人)의 세계는 보다 어둠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곳을 가리켜 무덤이라고 하였다. 구약시대의 영인들은 모두 이 영계에 머물러 있다가 지상성도들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4. 지상인간들이 끌어 올리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 (데살 4 : 17)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공중은 공간적인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성서에 있어서 땅은 타락된 악주권(惡主權)의 세계를 의미하고, 하늘은 죄가 없는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은 땅에도 아니 계시는 곳이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 : 9)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땅에서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요 3 : 13)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주(主)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셔서 사탄주권을 물리치시고, 지상천국을 복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선주권의 세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5.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짐 (마 24 : 29)


창세기 37장 9절 이하를 보면,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열한째인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요셉이 커서 애급의 총리대신(總理大臣)이 되었을 때, 과연 이 꿈대로 그 부모와 형제들이 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해와 달은 부모를 상징했고, 별들은 자녀들을 상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독론(基督論)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예수와 성신(聖神)은 아담과 해와 대신 인류를 중생(重生)해 주실 참부모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해와 달은 예수와 성신을 상징하고 별들은 자녀 된 성도들을 상징한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을 참빛으로 비유한 것은(요 1 : 9), 그가 '말씀'으로 육신을 이루신 분으로 오셔서(요 1 : 14) 진리의 빛을 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하는 햇빛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빛을 이름이며, 달빛은 진리의 신으로 오신 성신(요 16 : 13)의 빛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신약(新約)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될 것인가? 마치 예수님과 성신이 오셔서 구약(舊約)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신약의 말씀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되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셔서 신약의 말씀을 이루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한(계 21 : 1) 새 말씀을 주시게 되면(본장 제 5장 I참조), 초림(初臨) 때에 주셨던 신약의 말씀은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여기에 말씀이 그 빛을 잃는다는 것은 새 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의 사명기간이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세(末世)에 있어서의 성도들이 모두 실족(失足)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아의 강림(降臨)을 열망해 오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반대하다가 전부 떨어진 것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그 날에 실족하게 됨으로써 그와 같이 떨어지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후편 제 6장 제 2절 II참조).


누가복음 18장 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신 말씀이나, 마태복음 7장 23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가 잘 믿는 성도들을 보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책망하시면서, 떠나가라고 배척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 같이 끝날의 성도들이 불신으로 실족하게 될 것을 아시고 경고하신 것이다.


제5절 말세와 새 말씀과 우리의 자세


I. 말세와 새 진리


타락인간(墮落人間)은 종교에 의하여 신령(神靈)과 진리(眞理)로써(요 4 : 23) 그의 심령(心靈)과 지능(知能)을 깨우쳐서 그의 내적인 무지를 타개하여 나간다. 그런데 진리에 있어서도 내적인 무지를 타개하는 종교에 의한 내적인 진리와 외적인 무지를 타개하는 과학에 의한 외적인 진리의 두 면이 있다. 따라서 지능에도 내적인 진리에 의하여 깨우쳐지는 내적인 지능과 외적인 진리에 의하여 깨우쳐지는 외적인 지능의 두 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지능은 내적인 진리를 찾아 종교를 세워 나아가고, 외적인 지능은 외적인 진리를 찾아서 과학을 세워 나가는 것이다.


신령은 무형세계(無形世界)에 관한 사실들이 영적 오관(五官)에 의하여 영인체(靈人體)에 영적으로 인식되었다가 이것이 다시 육적 오관에 공명되어 생리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며, 진리는 유형세계(有形世界)로부터 직접 인간의 생리적인 감각기관에 의하여 인식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식도 영육(靈肉) 양면의 과정을 거쳐서 오게 된다. 인간은 영인체와 육신이 합해야만 완전한 인간이 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영적 과정에 의한 신령과 육적 과정에 의한 진리가 완전히 조화되어 심령과 지능이 아울러 깨우쳐짐으로써, 이 두 과정을 통해 온 양면의 인식이 완전히 일치될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과 피조세계(被造世界)에 관하여 완전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지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신령과 진리에 의하여 심령과 지능을 아울러 깨우치게 함으로써,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여 나아가는 섭리를 하신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이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서 그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높아지게 되는 것이므로, 그를 깨우치기 위한 신령(神靈)과 진리(眞理)도 또한 점차로 그 정도를 높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리는 유일(唯一)하고 영원불변(永遠不變)하지만, 무지한 상태로부터 점차 복귀되어 나아가는 인간에게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나 방법은 시대를 따라 달리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인간이 아직도 몽매하여 진리를 직접 받을 수 없었던 구약 전 시대(舊約前時代)에는 진리 대신으로 제물(祭物)을 드리게 하셨고,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모세 때는 율법(律法)을, 예수님 때는 복음(福音)을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진리라고 하시지 않고, 그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요 14 : 6). 왜냐하면 그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진리 되신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어서 그 말씀을 받는 대상에 따라서 그 범위와 정도와 방법을 달리하시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서의 문자는 진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요, 진리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이러한 견지에 입각해 볼 때, 신약성서(新約聖書)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있어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대단히 저급(低級)하였을 때의 인간들로 하여금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 주셨던 하나의 과정적인 교과서(敎科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사람들을 깨우치기에 알맞도록 주셨던,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비유 또는 상징적인 표현 방법 그대로를 가지고 현대과학 문명인(文明人)들의 진리 욕구(眞理慾求)를 완전히 충족시킨다는 것은 결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성인(知性人)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는, 보다 고차적인 내용과 과학의 표현방법에 의한 것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우리는 새 진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새 진리는 이미 총서(總序)에서 논한 바, 인간의 내외 양면의 무지를 타개하기 위하여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통일된 과제로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새 진리가 나와야 할 이유를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성서(聖書)는 진리 자체가 아니라 그 진리를 가르쳐주는 하나의 교과서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교과서에는 그 진리의 중요한 부분이 거의 상징과 비유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사람에 따라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차이로 말미암아 많은 교파(敎派)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파 분열의 제1원인은 인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성서 자체에 있기 때문에, 그 분열과 싸움은 계속 확대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진리가 나와서 상징과 비유로 되어 있는 성경의 근본내용을 누구나 공인(公認)할 수 있도록 해명하지 않는 한, 교파분열과 그 싸움의 길은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기독교의 통일에 의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 16 :25)는 말씀으로써 끝날이 이르면 다시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 : 12)고 하신 말씀대로,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하실 말씀을 못다 하시고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까지도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 : 12)고 하심으로써, 속해 있는 말씀을 다 하시지 못하는 서러운 심정을 토로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못다 하시고 돌아가셨던 그 말씀은 영원히 비밀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 : 13)고 계속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 말씀은 반드시 성령(聖靈)에 의하여 새로운 진리로써 가르쳐 주시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계 5 : 1)고도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책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신 그 말씀이 인봉(印封)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계속하여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여 요한이 애곡(哀哭)할 때에,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계 5 : 5)고 말씀하셨다. 여기의 다윗의 뿌리에서 탄생한 사자(獅子)는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가 인류 앞에 오랫동안 일곱 인(印)으로 봉하여 비밀로 남겨 두셨던 그 말씀의 인봉을 떼시어 성도들에게 새로운 진리의 말씀으로 주실 때가 와야 할 것이기 때문에,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계 10 : 11)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 2 : 17∼18)라고도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모로 보아서 말세(末世)에는 반드시 새 진리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II. 말세에 처한 우리들이 취할 자세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의 흐름을 보면, 낡은 것이 끝나려 할 때 새로운 것은 시작된다. 따라서 낡은 것이 끝나는 점이 바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낡은 역사의 종말기(終末期)는 바로 새 역사의 시창기(始創期)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는, 같은 점에서 출발하여 각각 그 목적을 달리하여 가지고, 세계적인 결실을 하게 된 선(善)과 악(惡)의 두 주권이 서로 교차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처한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이념과 사상의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와 혼돈 속에 빠지게 되며, 외적으로는 무기로 인한 알력과 투쟁 속에서 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말세에는 나라가 나라를 치고, 민족과 민족이 상쟁하며, 가족들이 서로 결투를 하리라(마 24 : 4∼9)는 성서의 기록대로 온갖 비참한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말세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참상(慘狀)이 일어나는 것은 악주권(惡主權)을 청산하고 선주권(善主權)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현상이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참상 속에서 새 시대를 이룩하기 위한 선주권의 중심을 반드시 세우시는 것이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님 같은 분들은 모두 그러한 새 시대의 중심으로 세워졌던 분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인 전환기(轉換期)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새 역사의 동참자가 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세우신 새 역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 시대의 섭리(攝理)는 낡은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 터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대의 종말기의 환경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이므로 그 시대에 대하여는 상충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섭리는 낡은 시대의 인습(因習)에 젖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납득되어지지 않는다. 새 시대의 섭리를 담당하고 나왔던 성현(聖賢)들이 모두 그 시대의 희생자가 되어 버렸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 실례로서, 아직도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종말기였을 때에, 신약시대(新約時代)의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구약 율법주의자(律法主義者)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단자(異端者)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었기 때문에, 종내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살해당하고 마셨다. 예수님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눅 5 : 38)고 말씀하셨던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다시 신약시대의 종말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셔서, 새 시대의 건설을 위한(계 21 : 1∼7) 새 진리를 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초림(初臨) 때에 유대인들로부터 바알세불이 접한 사람으로 몰렸듯이(마 12 : 24), 재림(再臨) 때도 틀림없이 기독교 신도들에게 몰림을 당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시면 자기가 많은 고난을 받으며 그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이라고 예언 하셨던 것이다(눅 17 : 25). 그러므로 역사의 전환기에 있어서 그대로 낡은 시대의 환경에 집착되어 안도하려는 사람들은 낡은 시대와 더불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타락된 인간은 신령(神靈)에 대한 감성이 극히 둔하기 때문에, 대개 진리면에 치중하여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따라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은 흔히 낡은 시대의 진리관(眞理觀)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새로운 섭리의 시대에로 전환하고 있어도 그들은 이 새 시대의 섭리에 쉽게 감응하여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구약성서(舊約聖書)에 집착되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신약시대(新約時代)의 섭리에 호응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러나 기도로써 신령한 것을 감득할 수 있는 성도들은, 새 시대의 섭리를 심령적으로 알게 되므로, 낡은 시대의 진리면에서는 상충적인 입장에 서면서도 신령을 따라 새 시대의 섭리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중에는, 구약성서에 집착된 인물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마음에 느껴지는 신령을 따라간 사람들뿐이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말세(末世)에 있어서 극심한 심적인 초조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막연하나마 신령을 감득하여서 마음으로는 새 시대의 섭리를 따르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이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에 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령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처한 신도들이, 그들을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주는 새 진리를 듣기만 하면 신령과 진리가 동시에 그들의 심령(心靈)과 지능(知能)을 깨우쳐서, 새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인 요구를 완전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처한 현세인(現世人)은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신령(神靈)한 것을 감득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음으로는 인습적인 관념에 집착되지 말고 우리의 몸을 신령에 호응하게 함으로써,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찾아진 그 진리가 완전히 자기의 몸에서 신령과 하나되어, 진정한 천적(天的)인 기쁨이 심령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게 하여 주는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끝날의 성도들은 참된 구원(救援)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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