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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경전 개론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7-03-31 17:45     조회 : 4607     트랙백 주소
1. 경전의 의미

2. 경전의 성립

3. 경전의 구성과 조직

4. 경전의 어계

5. 경전의 분류

6. 경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경전의 의미

 

경전이란 부처의 설법을 담은 불교 경을 가리키는 말로 ‘법화경’ ‘화엄경’ 등과 같이 경(經)자가 붙은 경장에 들어 있는 모든 경을 말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의미가 점점 확대되어 경장의 경전뿐 아니라 율장에 속하는 율서와 논장에 속하는 논서, 그 외에 후대 불교도의 저술, 불교의 역사, 전기서, 기타 불교에 관계 있는 일체의 저술 즉, 불교사상이 담긴 책들 모두를 경전이라 부릅니다.

 

대장경(大藏經)

대장경은 경.율.논 삼장이나 여러 고승의 저서 등을 모은 총서를 말한다. 달리 "일체경(一切經)"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범어(산스크리트어) 원전의 대장경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는 않으나, 팔리어 원전과 주로 범어로부터 역출한 한역.티벳역, 다시 티벳역으로부터 중역한 몽고역.만주역 등의 대장경은 대체로 완전한 형태로 현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장경이라 함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첫째로는 가장 먼저 이뤄진 것으로 "팔리어 삼장"을 들 수 있다. 이는 초기 불교의 성전으로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經藏)과 계율(律藏) 그리고 제자들이 교법에 대해 연구한 것(論藏)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경율론 삼장은 모두 부파불교시대 및 그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서 대승경전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은 점이 특색이다. 두번째로 들 수 있는 총서가 "티벳대장경"이다. 티벳어로 번역된 불전의 집성을 뜻한다. 후기 인도불교의 경론이 거의 티벳어 번역으로만 남아 있고, 특히 충실한 직역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범어 원전의 복원은 물론 불교연구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동국대에 달라이라마가 기증한 전질이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장경이라고 인식되어 있는 것은 "한역대장경"이다.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이나 논서를 중심으로 중국 불교학자들의 저작들도 포함하여 편집한 것으로서, 대.소승의 경율론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2세기 이후 1천여 년에 걸쳐 진행된 번역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팔리어 삼장"이나 "티벳대장경"에 없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학계에서는 불교연구의 제1자료로 삼고 있다. 또한 불교를 사상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한역의 경론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한역대장경 중 교정이 정밀하고 판목과 문자가 호화로운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과 이를 저본으로 하면서도 독자적인 분류로써 경전을 배열한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한글판으로는 "한글대장경"이 동국대 역경원에 의해 2001년 이면 전체 318권이 완간되었다.

 

 

 

2. 경전의 성립

 

보통 불교경전이라 하면 한역 대장경을 많이 연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처음부터 어렵고 복잡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펴신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수한 외래 문화의 도입과정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합니다.

처음부터 경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부처님 스스로는 당신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저서나 기록 또는 어떤 방법으로도 보관하거나 전승시키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나 신도들이 머리 속에 기억하여 정리하고 보존, 전달해 왔을 따름입니다. 수백년 동안은 글자로 베껴 쓰는 일도 없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전통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부처님의 설법 내용을 제자나 신도의 기억에 의존하여 구술로 전달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내용을 한 마디도 어긋나지 않게 기억 속에 간직하기란 기대할 수 없는 것이고, 다만 설법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줄거리만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내용의 파악에 있어서도 사람들이다 똑같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같은 설법을 듣고도 듣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입멸하시고 나자, 사소했던 이러한 견해 차이가 보다 심각한 상황을 야기할 우려가 발생하여 자신의 견해를 부처님의 것인 양 주장하는 사태도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그 분의 실제 가르침을 확인하고 정리해 둘 필요성이 제기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청취한 제자들이 전체 회의라 할 수 있는 모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인 불제자들의 회합을 ‘결집’이라 하는데, 비록 이 모임의 결과가 문자화되지는 않았지만, 이 모임에서 결정된 내용들이 후대에 소위 경전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물론 이것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부가 있지만,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당시의 상황과 이에 관한 이야기의 전통을 고려할 때, 이 회합을 일단 사실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입니다.

모든 경전은 첫머리에 여섯 가지의 필수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육성취(六成就)라고 하여

 

석존의 가르침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신성취(信成就 : 여시如是)와

내가 직접 들었다는 문성취(聞成就 : 아문我聞),

설법의 때를 명시하는 시성취(時成就 ; 일시一時),

설법을 한 것이 붓다였다는 주성취(主成就 : 불佛),

설법한 장소를 밝히는 처성취(處成就 : 재사위국在舍衛國),

어떤 사람이 들었는가를 밝히는 중성취(衆成就 : 여대비구與大比丘) 입니다.

그래서 모든 경전이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여대비구~"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경전의 결집

첫번째 경전 편찬 회의(第一結集)

부처의 입멸 소식이 들리자 일부의 수행자들은 부처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이에 놀란 마하가섭(당시 수도승단의 리더)은 부처의 입멸 직후 왕사성의 칠엽굴(七葉窟)에서 승단의 대표를 소집, 경전 편찬 회의를 개최합니다.

이 회의는 마하가섭의 총 주재하에 아난다가 경(經)부분을, 그리고 우팔리가 계율(戒律) 부분을 각각 주재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암송(暗誦)의 형식으로 편찬된 경과 율들은 500명의 대표들에 의해 수정, 보완, 재확인된 후 수행승단 전체의 이름으로 공포되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인원이 500명이었기 때문에 이 회의를 <오백 결집>(五百結集)이라고도 합니다. 이때 편찬된 것은 주로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이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원시근본경전(장부, 중부, 증지부, 상응부의 경전들)과 율장의 기본 골격이 됩니다.

 

두 번째 경전 편찬 회의(第二結集)

불멸 후(불멸후) 100년경(B.C. 3C)이 되자 계율적인 사소한 문제 때문에 수행승단은 두 파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적인 진보파(대중부)와 노장층을 주축으로한 보수주의적인 전통파(상좌부)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노장층들은 젊은층의 새로운 주장으로부터 자기들의 주장을 지키기 위해 당시의 상업도시 베샬리(비사리)에서 두 번째 경전 편찬 회의(第二結集)를 개최하게 되는데, 이 회의를 주재한 이는 장로 야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때는 700명의 장로들이 참석했다 하여 보통 <칠백결집>(七白結集)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럼 두 번째 결집의 불씨가 된 계율 문제란 무엇이었을까요.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그 발단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때 계율에 밝은 서인도 출신의 장로 야사가 상업도시 베샬리(중인도 마가다 지방)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베샬리에서 그곳 수행자들이 신자들로부터 금화(金貨)와 은화(銀貨)를 시주받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그는 베샬리 수행승들에게 “그것은 계율에 어긋나는 짓이다”라고 극구 만류했다. 그러나, 베샬리의 젊은 수행자들은 야사가 시주돈을 받지 않느다고 오히려 화를 내었다. 야사는 이 풍습을 계율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에 결국 베샬리의 젊은 수행자들에게 배척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베샬리의 수행승들은 시대적 요청에 따라 숲속의 생활로부터 승원(僧院)생활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래서 화폐가 필요하게 되어 신자들로부터 돈을 시주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사는 이러한 속사정을 잘 알지 못하여 격분했던 것입니다. 야사는 그 후 서인도와 동인도로 가서 그곳의 장로들에게 베샬리의 사정을 이야기한 다음 응원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동인도와 서인도의 수행승단에서는 각각 4명의 대표를 선발, 즉시 베샬리로 가서 젊은 수행자들을 상대로 돈의 시주받음을 비롯한, 계율에 위반되는 열 가지 사항(十事)들을 지적하고 옳고그름을 장시간에 걸쳐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베샬리의 젊은 수행자들은 풍습은 모두 계율에 어긋나는 비법(非法)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장로단(長老團)의 이름으로 시정을 요구했지만, 베샬리의 젊은 수행자들은 판정에 불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 판정에 불복하는 진보파(大衆部)와 이 판정을 내린 보수파(上座部)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경전 편찬 회의로 이때 주로 <율장>(律藏)이 편찬되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경전 편찬 회의(第三結集)

불멸 후 200년경(B.C 2세기경) 아쇼카왕 당시 수도 파탈리뿌트라(현재의 파트나)에서 세 번째 경전 편찬 회의가 열렸는데, 이는 해이해진 교단을 정비하고 외국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때 1000명의 대표들이 모여 <삼장>(三藏, 즉 經藏, 律藏, 論藏) 전체를 편찬했는데, 그 편찬 대표는 목갈리뿌트라(목건련제수)였습니다. 이편찬 회의는 무려 9개월간에 걸쳐 개최되었는데, 이 회의를 <천인 결집>(千人結集)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세 번째 경전 편찬 회의가 끝난 직후 스리랑카 등 각 지역에 전법사(傳法師, 포교사)들이 왕명(王命)으로 파견됩니다.

 

네 편째 경전 편찬 회의(제4결집)

① 제1설, 소승권의 편찬 회의설 남방불교권의 이 편찬 회의설은 스리랑카의 「장사(Mahavamsa)」에 근거한 것입니다.

즉, 제 3결집 후 아쇼카왕이 왕명으로 불교 전법사들을 각지에 파견하였는데, 이때 아쇼카의 아들 마힌다 장로는 4명의 전법사와 함께 불교 전법의 임무를 띠고 스리랑카에 가게 되는데, 그가 도착하자 즉시 그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전(口傳)으로 전수받기 위한 경전 편찬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이때 모인 인원은 16,000명이었다고 전해지며, 이어서 B.C 1세기 중반에 대대적인 경전 편찬 작업이 개최되어 남방권에서는 이를 <네 번째 경전 편찬회의>(제4결집)로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이 편찬 회의는 마하테라라키타의 주재하에 500명의 학승들이 참여했다고 하며, 이때 편집된 문헌은 <경>, <율>, <논>의 팔리 삼장(三藏) 일체와 기타 이에 대한 주석서 일체였다고 합니다. 알로까 동굴에서 편찬 작업이 열렸기 때문에 이 경전 편찬 회의를 또한 <알로까비하라 결집>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이때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오던 팔리 삼장 일체를 종려나무잎에 문자로 기록했다고 하는데, 이것을 보통 패엽경이라고 하여, 불경이 문자로 된 최초의 일이라고 전합니다.

 

② 제2설, 대승권의 편찬 회의설 대승 불교권의 자료에 의하면, A.D 2세기경 카니시카왕 당시 지금의 인도 캐쉬미르 지방에서 네 번째 경전 편찬회의가 열렸다고 합니다.

협존자와 세우에 의해 주재된 이 회의에는 500명의 대표가 참석, 기존의 경, 율, 논 삼장(經律論三藏)에 대한 광범위한 주석이 덧붙여졌으며, 이때 덧붙여진 주석서가 후에 「대비바사론」 200권으로 집대성되었습니다. 이밖에도 후대로 내려가면서 스리랑카, 타일랜드, 버마 등지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몇 번에 걸쳐 경전 편찬 회의(結集)를 개최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첫 번째(第一結集)에서 네 번째(第四結集)까지를 정식 경전 편찬 회의로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입니다. 이렇듯 첫번째 경전 편찬 회의(제1결집)때 암송의 형식으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온 경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영구보존’을 목적으로 B.C 1세기 중반부터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으며, 이렇게 문자로 기록된 경전들을 보통 팔리어 삼장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팔리어는 인도 서부 지방(마가다 지방)의 서민들이 쓰던 옛 언어로서 문자가 없는 구전(口傳)언어였다고 합니다. 이 <구전언어>가 B.C 1세기 중반부터 스리랑카의 알로까 동굴에서의 경전 편찬 작업을 계기로 작 지방의 문자 형식을 빌어 종려나무잎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후에 제작된 대승경전 일체는 팔리어가 아닌 산스크리트어(범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산스크리크어는 인도의 브라만 사제층에서 옛부터 사용해 오던 고급언어였습니다. 그러므로, 불교경전의 기록이 팔리어에서 산스크리트어로 옮겨갔다는 것은 곧 불교 자체가 힌두교 문화권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후 B.C 3세기경 두 번째 경전 편찬 회의(제2결집)

를 계기로 <원시 근본 경전>의 골격이 성립된 이래 B.C 3세기 이후 ~ A.D 1세기 이전에는 원시 근본 경전인 오부(五部) 경전 이외의 소승경전들이 제작되었던 것입니다. A.D 1세기경에는 베샬리 진보파(대중부)의 정신을 이어받은 일단의 급진주의 불교도들에 의해서 불교의 혁신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소위 대승불교 운동이었다.

이때 맨처음으로 제작된 대승경전은 주로 반야부 계통의 경전들(반야심경, 금강경 등)이었습니다. 잇달아 「법화경」,「유마경」,「화엄경」,「정토3부경」을 비롯하여 「능가경」,「해심밀경」등이 제작되었습니다. 또, A.D 7세기 이후에는 「대일경」,「금강정경」등 밀교 계통의 경전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불교경전들은 <원시 근본 경전>에서 <소승경전><대승경전><밀교경전>의 순서로 제작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선의 어록(語錄)들은 주로 중국의 선승들에 의해서 씌어졌는데, 그 시발점은 달마(A.D 520)의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이 아니라(이 책은 달마 자신의 저술이 아니라 후대의 제자들에 의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3조 승찬( ~ 606)의 「신심명(信心銘)」으로부터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 <선의 어록들>이 성립 과정에는 중국의 노장(老壯)사상의 간접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3. 경전의 구성과 조직

 

불교 경전은 심오한 사상을 품위있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는데, 우리는 십이분교와 삼분을 통해 이런 경전의 서술과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십이분교는 문체, 문장 및 기술의 형식과 내용 등을 12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경전이 성립 이후 그 원형이 끊임없이 개작되어왔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제1차 결집 때 석가모니불의 말씀을 충실히 전하다가 변화를 거듭하면서 소설체와 같은 기술, 회화 문답 형식과 시문, 찬가의 내용이 차츰 복잡하게 되고, 또한 삼분이 발달하여 경전은 희곡체의 고급 문학작품의 형식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12분교

12분교는 불멸 직후 열린 제1결집 후에 분류된 것으로 문체, 문장 및 기술의 형식과 내용 등을 기준으로 경전을 12가지로 분류한 것을 말하는데 12부경, 12분성교, 12분경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12분교에서 인연과 비유, 논의 등 세가지를 뺀 아홉가지를 9분교라 부르기도 합니다.

 

1) 경(經)은 범어 sutra를 번역한 말인데 수다라(修多羅)라 음역하며, 이는 사상적으로 그 뜻을 완전히 갖춘 경문을 말합니다. 즉 단순한 이야기, 또는 비유만의 서술이 아니라 예컨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과 같은 사상을 완전히 표현한 경문을 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고기송(고기송)은 범어 gatha 의 번역으로, 게송 또는 송이란 뜻입니다. 가타(伽陀) 게타(偈陀), 또는 게(偈)라 음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운을 부친 시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운문으로서 술한 경문을 말하는데, 산문체로 된 경전의 1절 또는 총결한 끝에 아름다운 귀절로서 묘한 뜻을 읊어 놓은 운문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전에는 본문의 내용을 거듭 읊은 중송이 있기도 하지만, 고기송이라 번역되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본문과는 관계없이 노래한 운문을 말합니다.

 

3) 중송(重頌)은 범어 geya 를 번역한 말인데, ‘기야(祈夜)’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앞의 고기송과는 대조적으로 운(韻)을 부치지 아니한 시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체이나 운을 안부치고 그 앞의 산문으로 된 본문의 뜻을 거듭 설명하는 부분을 가리킵니다.

 

4) 무문자설(無問自說)은 범어 udana의 번역으로 감흥어(感興語)라 번역되기도 하며 우타나(優陀那)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이 종교적 체험을 감격한 그대로 말하는 부분인데, 경전에 보면 부처님은 제자나 신도의 질문에 의해 설교하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누구의 질문에 의하지 아니하고 설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을 udana, 즉 무문자설이라 하는 것입니다.

 

5) 미증유법(未曾有法)은 범어 abhuttadharma 를 번역한 말로 희법(稀法)이라고도 하며 아부다달마(阿浮多達磨)라 음역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경 가운데 불가사의한 일을 말한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범부(凡夫)는 경험하지 못하는 성자 특유한 심경(心境), 또는 정신적 기적 같은 것을 설한 부분입니다.

 

6) 여시어(如是語)는 범어 iti vuttaka 를 번역한 말로 이제불다가(伊帝弗多迦)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전 첫 머리에 보면 ‘여시아문(evam maya-srutam) 즉 ‘이와같이 나는 들었노라’라는 말은 곧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 말 속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그대로 믿고 의심치 않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7) 인연(因緣)은 범어로 nidana를 번역한 말로 니타나(尼陀那)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어떤 경전을 설하게 된 사정이나 동기 등을 서술한 부분을 말합니다.

 

8) 비유(비유, avadana )를 번역한 말로 아파타나(아파타나)라 음역되기도 하며, 이는 경 가운데서 비유나 우언(寓言)으로써 교리를 설명, 해석한 부분을 말합니다. 불교 경전에는 이 비유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며, 경에 따라서는 이 비유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된 경전도 있습니다.

 

9) 본생(本生) 범어 jataka 를 번역한 말로 자다가 또는 자타가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의 전생의 이야기를 적은 경문으로, 부처님이 전생에 하신 육바라밀의 행업 등을 말한 부분이다. 파알리어 삼장에는 550종의 본생이 기록되어 있고, 한역 대장경에는 생경이라던가 육도집경 또는 불본행집경 등의 경이 모두 이 본생을 담은 경전들입니다.

 

10) 수기(授記, vyakarana) 를 번역한 말로, 화가라나(和伽羅那)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 세상에서 성불하리라는 것을 낱낱이 예언하는 경문의 부분인데, 보통 문답식으로 의론을 전개하다가 최후에 부처님이 인가를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11) 논의(論議)는 범어로 upadesa를 번역한 말로 달리 축분별소설(逐分別所說)이라고도 한역되며, 우파제사(優波提舍)라 음역합니다. 이는 해석, 논술로써 연구 논문 형식의 경문을 말하는데, 부처님이 논의하고 문답하여 온갖 법의 내용을 명백히 말한 부분을 가리킵니다.

 

12) 방광(方廣)은 vaipulya 를 번역한 말로 방등(方等)이라고도 번역되며, 비부략(毗浮略), 비불략(毗佛略) 또는 비부라(毘富羅) 등으로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의 설교가 문답을 추구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면서 논리적으로 깊고 넓게 의미를 확대하고 심화(深化)하여 철학적 내용이 성격을 띤 경문을 말합니다.

 

3분 - 서(序), 정종(正宗), 유통(流通)의 삼분(三分)

중국에서 경전을 서지학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불교학자인 동진의 도안은 한 경전의 조직을 보면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3단으로 되어 있다고 갈파하였는데, 이 3단번은 극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그 후의 학자들은 모두 이를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분은 경문의 첫 머리에 ‘여시아문’ 이하 그 경을 설한 때와 장소, 그리고 대상 등 일체의 사정을 서술한 부분이고, 정종분은 석존의 설법을 서술한 경의 본체이며, 유통분은 경문의 마지막에 그 설법을 들은 대중의 감격이라던가 계발의 정도, 그리고 장래에 이 경을 읽는 사람의 이익이나 공덕, 또는 그 경의 이름 등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이와같은 삼분을 염두에 두고 경전들을 살펴보면 단편의 경전은 정종분만 있는 것도 있고 또 서분과 유통분이 극히 간단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편의 경전은 반드시 이 삼분을 구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후의 이분이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서분과 유통분만 아니라 전후의 이분이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서분과 유통분과는 석존이 설법한 언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고 석존의 설법을 들은 사람의 말이거나 쓴 사람의 기술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경전이라는 것은 석존의 설법만을 문자화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불교학자들은 서분의 기술 여하에 의해서 그 경전의 사상이라던가 내용의 심천 등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하여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정종분도 또한 오로지 석존의 설법만이 아니고 제자들의 문답 왕복과 제천(諸天)의 말, 시방세계(十方世界) 보살들의 말 등이 석존의 말씀보다 더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경전이 적지 않습니다. 유명한 ‘화엄경’과 같은 80권이나 되는 장편의 경전도 석존의 말씀은 겨우 2,3장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석존 이외의 사람의 말이 기록되어 있고, 그 짧막한 말도 간단한 설명 또는 회화가 아니라 시가(시가), 운문, 비유, 논설 등 이른바 십이분교의 제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4. 경전의 어계

 

부처님은 언제나 제자들에게 무지한 하층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민중어로 가르침을 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인도의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불교 경전이 각 지방의 민중어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그 지역에서는 더 이상 일반 민중이 이해할 수 없는 타국어가 되어버려 불교의 가르침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 부처님의 참뜻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경전은 여러 가지 언어로 쓰여지게 됩니다. 이것이 경전의 어계라 할 수 있습니다.

 

범어

범어(梵語) 범어는 고대 인도에 있어서 바라문교의 거룩한 성전어(聖典語)이었으므로 인도의 다양한 언어 중 표준어라고 할만한 것입니다.

이러한 범어가 불교의 성전어가 된 것은 대월지국의 카니슈카왕 때에 카슈밀에서 개최되었던 제4결집시에 범어를 불교의 성전어로 한다는 결의가 있었기 때문으로, 그 후 불교경전은 범어로써 표기되어 범어 경전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범어경전은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중앙 및 동북 아세아로 전하여져서 중국어, 서장어로 번역되어 소위 북방불교경전의 원서(原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범어경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19세기에 네팔의 승원(僧阮) 고탑(古塔) 속에서 발견된 이후의 일입니다. 그 뒤로 여러 곳에서 범어경전이 발견되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아서 삼장을 통하여 약40부정도 밖에 안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범어경전은 거의가 대승경전이고 소승경전은 극히 적은 편이나, 다른 경전들과 같이 질서 정연한 체계는 엿보이지 않으며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러한 범어경전이 산발적으로 네팔 등의 고탑 또는 고사원(古寺院) 에서, 또는 서역지방의 모래 속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회교도의 침입으로 법난(法難)을 맞은 인도의 불교도들이 법보(法寶)의 보호처로 히말라야산의 변방을 택하거나, 그렇게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지하에 은닉처를 구하였음을 알려 주는 것으로 법보를 소멸시킬 수 없다는 그들의 호법(護法) 의지를 보여준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범어 경전의 발견은 이후에도 계속 되었는데, 특히 영국의 네팔 주재원이었던 훗지손에 의해 수집된 경전들은 유럽 학계에 소개되어 인도불교 연구에 신기원(新紀元)을 열었으며, 영국의 바우워 대위는 중국 신강성의 차고에서 ‘공작왕주경(孔雀王呪經)’을 입수하였고, 그 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의 탐색대가 신강과 돈황에서 범어 고사본을 발견하였으며, 1930년에는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bamian)에서 상당한 분량의 사본 단편을 발견하였고, 1931년 카슈밀의 길기트(gilgit)에서는 다량의 범본 사경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범어경전은 불교경전의 전체 분량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각 시대를 통하여 대, 소승의 경전이 있는 관계로 경전의 원어로서는 범어가 파알리어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존의 범어 경전들은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어 영, 불의 학회나, 러시아의 학사원, 또는 인도의 서점이나 일본 등에서 출판되었읍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범어경전의 종합적인 출판은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팔알리어

파알리어(巴利語) 고대 인도 남방의 언어는 파알리어로 지방어였지만, 이 지역에 유포된 경전은 자연히 파알리어로 표기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 남단의 세이론(ceylon)에 불교가 전해졌을 때에는 지형적인 관계로 파알리어 경전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시기는 대략 서력기원을 전후한 때로 현재 스리랑카에는 삼장의 완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파알리어 성전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파알리어경전은 버어마, 타일랜드 등에도 원전 그대로 전하여져서 현재 소위 남방불교도는 모두 이 파알리어 원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파알리어 경전은 현존하는 여러 불교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며 원초적인 형태와 내용을 정직하게 담고 있어서 원시불교 연구에 있어서는 더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파알리어 성전은 경, 율, 논, 삼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장은 교법에 관한 것의 집성으로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지부(增支部), 소부(小部)의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5부 중에서 장부, 중부, 상응부 및 증지부의 4부는 내용이 한역의 아함과 비슷하며, 소부는 한역의 아함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부에는 법구경, 경집, 본생경 등 유명한 경전들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율장은 경분별(經分別), 건도부(건度部), 부수(付隨) 등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분별은 비구, 비구니의 250계와 350계의 각 조문을 주석하고 설명한 것이고, 건도부는 출가승단의 행사작업 등을 해설한 것이며, 부수는 보유적(補遺的)인 것입니다.

 

그리고, 논장은 석존 교설의 해설서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법취론(法聚論), 분별론(分別論), 인시설론(人施設論), 논사(論事), 계설론(界說論), 쌍대론(雙對論), 발취론(發趣論) 등의 7론이 유명합니다.

 

파알리어성전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에 걸쳐 영국의 ‘파알리어성전협회’에서 로마자본(字本)으로 완질(完帙)을 간행하여 유럽 학계의 원시불교(原始佛敎) 연구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남전대장경’이란 이름으로 1935년~1941년에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판한 바가 있습니다.  

 

중국어

범어의 원전은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대에 서역지방 즉 중앙아세아의 여러 나라에 전하여졌는데, 이것은 다시 점차로 중국 본토로 전하여져서 한역되게 되었습니다.

이 경전의 한역은 서기2세기로부터 10세기에 이르는 동안 각 왕조를 통하여 주로 국가적인 뒷바침에 의해 행하여져서 인도에서 성립된 대부분의 경전이 번역되었는바, 이것은 대부분이 현존하여 있습니다.

이 한역 경전은 그 종류와 분량에 있어서 다른 어떠한 언어의 경전보다도 가장 완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우리나라 또는 일본 등 제국에서 발달된 대승불교의 근본 성전이 되어 있습니다.  

 

서장어

티벳트에는 티벳 역사상 영주로 추앙되는 손첸 감포왕 때에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티벳에는 민족종교로서 샤마니즘적인 주술을 중시하는 본교가 있었는데, 이 본교와 새로 전래된 불교가 습합하여 소위 라마교라고 하는 티벳의 독특한 불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7세기 전반 손첸 감포왕이 티벳의 전국토를 장악하였는데, 이것이 중국의 문물이나 풍속 등이 티벳으로 전하여진 계기가 되었고, 중국이나 인도의 불교가 전래하게 된 단서가 되었습니다. 또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문성공주가 중국에서 법사들을 모셔와 사원을 건립하도록 하고, 유학생들을 파견하여 왕래가 활발해짐으로써 범어 경전이 티벳으로 전래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톤미 삼보타를 인도로 파견하여 범어를 연구토록 하여 티벳 외의 문자와 문법을 창안하여, 범어경전이 티벳어로 번역되어 됩니다.

 

이리하여 티벳어로 번역된 불교 경전은 라마교의 경전으로써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되는데, 그 이후 티벳에서는 10세기 이후 네 차례의 대장경 간행이 있었고, 중국에서도 명, 청대에 세 차례의 간행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서장대장경 또는 번본대장경(番本大藏經)이라고 합니다.

 

서장역(西藏譯) 경전은 문화사상적 가치면에선 한역에 뒤떨어지진 면이 좀 있지만, 그 종류와 분량이 한역 다음으로 풍부하고, 한역에 없는 것이 서장대장경에 있어, 또 언어의 성질상 범어를 모방하여 서장어(西藏語)를 만들었기 때문에, 서장어 경전을 범어 경전으로 복번(複飜)할 수 있어서 범어경전이 적은 오늘날에 있어서 서장어 경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서장대장경은 같은 라마교권인 몽고 등에도 영향을 끼쳐 1310년에는 30여 명의 학자가 동원되어 서장어을 몽고어로 번역 간행한 바가 있고, 또한 1772년부터는 약 20년간에 걸쳐 만주어로도 번역되어 완간된 바도 있습니다.

 

구미어

서양에서 인도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18세기부터 입니다.

그 이유는 서양인(특히 영국인)이 동양(특히 동남아)에 와서 정치, 군사적으로 지배를 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상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나 기독교 전파를 위해서 반드시 인도인의 생활을 알고, 그 사상이나 종교를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서는 선교사들 중에 저명한 동양학작가 적지 않게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산스크리트어 사전을 만든 옥스퍼드 대학의 윌리암스와 벨지움의 뿌생, 불전을 지어 유명한 독일의 올렌베르그, 뮌헨서 불교잡지를 낸 파알리어 학자 가이게르, 영국의 동양 연구 개척자인 막스뮬러, 파알리어 불전연구 개척자인 리스 레이비즈 부부, 카아펜터, 빈테르닛트츠, 하이델베르크에 불교학 연구회를 설립한 독일의 발레세르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현존하는 범어 및 파알리어 경전의 사본은 대부분 영어, 독일어, 불어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그들의 뒤를 이어 서양에서는 서장어 경전도 점차 번역되고 또 한역경전도 계속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파알리어성전협회(pali text society)의 파알리어 성전의 출판과 그의 영역 사업, 그리고 막스 뮬러가 동양 종교의 성전을 처음으로 영역 집대성한 ‘동방성서’ 50권의 출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

일본불교가 고래로 한역경전을 그대로 사용해왔던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일본어역을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쓰고 있다. 그들은 번역에 많은 학자가 동원되어, 학술적 연구의 견지에서 범어 원전을 참조하여 한역의 사정을 밝히기도 하고 혹은 파알리어 경전을 직접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하여 경전의 번역 외에 경전 연구에 있어서도 상당히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일본어로 번역된 경전을 보면, 각 종파에서 자기 종파의 소의경전을 번역한다던가 또는 학자들에 의해 단일 경전들이 번역된 것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니 전 경전을 완역한 것으로는 국역대장경, 국역일체경, 남전대장경 등이 유명하다.

 

 

 

5. 경전의 분류

 

경전은 크게 경(經), 율(律), 논(論) 세가지(삼장三藏)로 분류하지만, 그것을 시대적이며 사상적으로 구분하여 분류할 경우는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이전까지의 경전을 원시 경전, 최고(最古) 불전인 숫타니파아타, 아함경, 열반경, 범망경, 법구경, 자타카, 백유경, 유교경, 밀린다왕문경 등을 묶어 소승경전, 그리고 대품반야경,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무량의경, 유마경, 화엄경, 무량수경, 아미타경, 능가경 등을 묶어 대승경전이라 합니다.

 

이렇게 경전을 대승경전과 소승경전으로 이분하는 것은 인도로부터 내려오는 습관으로 지금까지 상식적으로 일반에 통용되는 것이나 엄밀하게 말하면 경전 중에는 대, 소승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소승경전은 아함경에 한하지만 대승경전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어 이 분류법은 정밀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옛날부터 가장 유행한 분류는 천태종의 지자대사(智者大師)가 교상판석(敎相判釋)할 때 쓴 것으로 화엄경류, 아함경류, 방등경류, 반야경류, 법화경류로 나누는 오분법(五分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족한 점이 많아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에서는 아함부(阿含部), 본연부(本緣部), 반야부(般若部), 법화부(法華部), 화엄부(華嚴部), 보적부(寶積部), 열반부(涅槃部), 대집부(大集部), 경집부(經集部), 밀교부(密敎部)의 10류로 나누었는데, 이것이 현재 가장 합리적인분류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1) 아함부

아함이란 팔리어 Agama로 표기하며 뜻은 전해 내려온 부처님 말씀을 모아서 완성했다는 의미의 성전입니다 ¨ 아함경 - 모든 소승경전을 총칭하는 말로서 주로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등 불교의 기본사상에 관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장아함경 - 비교적 긴 내용만을 추려서 엮은 경

*중아함경 - 중간정도의 길이 경을 모아 엮은 경

*증일아함경 - 법수에 따라 설한 경.

*잡아함경 - 짧은 내용을 모아 엮은 경

 

2) 본연부

본연은 본생 또는 본기라고도 하는데, 주로 부처님이 아득한 과거세의 영겁다생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자아의 완성을 위한 보살행을 한 일종의 고사, 전생설화 등을 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전이 자타카, 즉 본생경입니다. 이 경이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생경, 현우경, 잡보장경, 육도집경, 보살본연경, 보살본행경, 보살본생만론 등에 실려 있습니다.

 

3) 반야부

대승불교 초기의 경전으로 공사상을 설한 경전으로 금강경과 반야심경이 들어 있습니다.

 

4) 보적부, 대보적경

보살이 수행하는 법과 장차 미래세에 부처가 되어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받는 수기성불 등에 관한 경전을 말합니다.

 

5) 대집부, 대방등대집경

대집부에 해당하는 모든 경을 다 모았다는 뜻으로 이 경전은 13종의 독립적인 대승경전들을 분 또는 품이라는 단위로 분류하여 하나의 경전처럼 엮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보살이 닦아야 할 불도를 반야경의 공사상에 근거하여 설교한 것입니다. ¨ 대승대집지장십륜경 - 줄여서 ‘지장십륜경’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지장보살의 물음에 대하여 부처님이 10종의 불륜(佛輪)을 설한 것입니다.

 

6) 화엄부, 대방광불화엄경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합니다. 이 경의 내용은 대승보살도 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이면서 부처의 성도와 과덕, 그 경계를 장엄하게 문학적으로 기술하면서 실천하는 과정에서 52위의 보살계통이 있음을 교리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 대승보리심을 일으킨 뒤 52명의 선지식(先智識: 부처님의 지혜와 덕을 갖춘 이)을 찾아 불법을 묻고 보살도를 닦아 마침내 해탈경계를 성취하는 입법계품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7) 열반부

열반경은 석존께서 입멸하기 직전 라자가하에서 입멸하신 구시나가라까지 가는 동안의 행적과 설법내용, 그리고 입멸 후의 다비, 사리의 분배, 봉안 등이 자세히 설해진 경으로 나라를 지키는 7가지 법, 교단이 번영하는 7가지 법, 유명한 자등명(自燈明). 자귀의(自歸依)의 설법, 순타의 최후의 공양 발병, 최후의 유훈(遺訓) 등이 실려 있습니다.

 

8) 법화부

법화경은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이며 "무량의경", "관보현경"과 더불어 법화삼부경이라고 합니다. 법화경 이전에 설한 삼승(三乘 : 성문, 연각, 보살)은 참다운 진리에 이르는 방편이었음을 밝히고(會三歸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설한 경입니다.

 

9) 경집부

인왕경, 유마경, 입능가경, 약사경, 미륵삼부경, 부모은중경, 우란분경, 원각경, 능엄경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10) 밀교부

밀교는 다신교적, 힌두교적인 요소가 불교에 유입되면서 대승불교 발전사에서 마지막에 나타난 사상으로, 진언과 다라니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대일경은 당 선무외삼장이 번역했으며 구체적인 경명은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이라 합니다. 전경이 7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경의 본문은 6권이고 공양하는 순서와 방법에 대한 의식1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일여래가 불사의한 위신력으로 스스로 증득한 법신 자체의 경지를 말씀하신 경전입니다. ¨ 금강정경은 불공삼장의 역본이 유통되고 있으며,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대교왕경이 있습니다. ¨ 천수경은 신앙적 측면에서 널리 독송되는 경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천수경은 그 자체로는 찾을 수 없고 여러 밀교적 관음신앙 경전들을 의례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6. 경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경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경전의 성립 시기와 그 당시의 사회상황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경전 성립의 사회적 배경은 경전 자체의 내용과 더불어 경전 속에서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 경전을 편찬한 주체자들이 어떠한 입장을 지닌 이들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윤곽을 제공해 준다.

 

둘째, 각 품의 특징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승경전들은 대개 여러 품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러한 각 품의 차이와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그 경전의 전체적인 구도를 조감하는데 확실한 도움을 줄 것이다.

 

세째, 경전 속에 등장하는 비유와 상징들에 대해 현대적인 해명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대승경전들은 부파불교 시대를 거쳐 성립되었다. 따라서 직설적인 기술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피부로 느꼈던 이들이 대승경전의 편찬자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무수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자신들의 뜻이 시대를 초월해서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와 같은 비유와 상징들은 우리 자신의 현실 속에 재해석될 때에만이 그 생명을 되찾는 것이다.

 

끝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주석가들의 견해에 얽매이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모든 주석가들의 주석은, 결국 그들 시대 속의 해석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대의 해석임을 명심해야 한다. 선가(禪家)에서 전해오는 불립문자(不立文字)도 본래의 뜻은 주석에 얽매이지 말고 주체적으로 경전을 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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